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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⑫ 93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경제학 ·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율곡 연구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 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이사를 맡고 있다.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풀어낼 지혜를 지나간 역사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면암 최 익현 선생의 5대손이다. 필자 최진홍 종 상길도 보았는데, 오래 헤어져 있는 끝에 마땅 히 이야기가 있을 터이나, 번개같이 응대하는 게 너무나 냉담하다. 만약 이것이 생시라면 어찌 이럴 수가 있겠는가? 30일 흐리고 추움. 저녁에 집의 아이와 김달이 칠래를 데리고 왔다. 처음으로 아이의 소송 경위에 대하여 들었다. 비 록 사리가 정당했다고는 하지만, 연고도 없는 객지 에서 하나의 강한 상대를 굴복시킨 것은 대개 구어 와 필담으로 물 흐르듯 조리있게 응대하여, 자신은 손실을 보지 않고 600원의 배상금을 징수하게 되 었으니, 젊은이의 기력이 오히려 가상하다. 이른바 소송을 한 자는 대사탄의 송아무개로 관청의 하급 관리에서부터 모두가 그의 폐부처럼 친밀한 관계 임에도, 승복하고 물러나 감히 저항하는 소리가 없 었다하니 매우 우습고 우습다. 문득 보니 집주인이 홍첩(紅帖)에다 혹 송축하는 말을 쓰기도 하고, 혹 남녀의 화상을 그리고 오채 (五彩)로 새겨, 각 문호(門戶)와 신사(神祠)에 붙이고, 말구유와 닭, 돼지, 거위, 오리의 횃대, 개와 송아지 의 우리, 절구와 공이, 마차 앞에 이르기까지도 단장 을 요란하게 하여 똑바로 보고 싶지 않다. 또 화포를 쏘아 화약 터지는 소리가 나고 불빛이 번쩍거린다. 마마귀신을 쫒는 것이라 하였다. 1910년대 초 김대락과 이상룡 등의 서간도 이주 경로(경상북도독 립운동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