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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⑧ 93 재기할 것이니 망동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적은 전해산의 행방을 몰라 백방으로 수탐하는 한 편 현상금을 걸기도 하였다. 이때 전해산 의진에 출 입하던 조 아무개란 자가 영산포 헌병대 통역 김 아 무개에게 밀고하자 전해산은 남원 고래산에서 서당 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은거한 지 수개월 만에 일병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전해산은 체포된 후 일 인들은 갖가지 감언이설로 전향할 것을 종용하였으 나 끝내 듣지 않고 다음과 같은 우국시를 남겼다. 서생이 무슨 일로 갑옷을 입었나? 본래 세운 뜻이 이처럼 틀려지니 한숨만 나오고 조정에서 날뛰는 꼴 통곡하겠네. 바다 건너 들어온 적, 차마 말도 못하겠소. 대낮에 소리 삼키고 강물이 멀어지고 푸른 하늘도 오열하며 실버들에 비 뿌리고. 이제 다시 영산강으로 가지 못하면 두견새 되어 피눈물 흘리며 돌아가리다. (書生何事着戎衣 太息如今素志違 痛哭朝廷臣作蘗 忍論海外賊侵圍 白日呑聲江水逝 靑天咽泣雨絲飛 從今別却榮山路 化作啼鵑帶血歸) 전해산 의병장은 광주를 거쳐 1910년 1월 대 구감 옥소에 이감되어 7월 18일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그 무렵 전해산이 처형되자 호남의진 우두머리들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 관이 돌아 온 날 순절하였다. 정부는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 령장을 추서하였다. (추신 : 호남의병 전적지 순례 후 한 달 쯤 뒤 전해 산 의병장 손자 전영복 씨로부터 당신 아버지 전진 규 씨, 어머니 양복례 씨가 열흘 사이로 모두 돌아가 셨다는 비보를 들었다. 내가 취재로 찍은 두 분 사 진이 이 지상에서 마지막 사진이었다고 울먹였다.) 1945년 경북 구미 출생으로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30여 년 교사생활과 함께 작가, 시민기자로 지냈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 치악산 밑에서 창작일에 전념하 고 있으며 광복회 고문을 맡고 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 · 『허형식 장군』, 산문집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 『항일유적답사기』 · 『누가 이 나라를 지켰 을 까』 · 『영웅 안중근』 · 『대한민국 대통령』 등이 있다. 이밖에도 사진집 『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 · 『개화기와 대한 제국』 · 『일제강점기』 · 『미군정 3년사』 ·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등과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 『평화와 인권의 대통령, 김대중』 등이 있다. 필자 박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