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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전설(91회) • 함경북도 성진의 만세시위(2) 93 신학교 교사였고 나머지는 예수교 신자들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말하고 있다. 도장관은 인근 길주 방면 으로 만세시위가 확산될까 3월 11일 나남 19사단에 출병을 요청했다. 부대들은 한밤중에 육로와 해로로 출발하여 그 다음날 중으로 성진에 도착했다. 학중면 농성동 사는 임명공립보통학교 학생 허학 봉(許學鳳)은 21세, 허원용(許元用)은 19세, 춘동의 최 국섭(崔國燮)은 22세 청년들이었다. 허학봉은 전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을 들어 알고 3월 11 일 학교에서 동료 학생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가만 있을 수 없다. 독립운동에 나서자!” 최국섭 · 허원용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날 정오 학 생들은 교문 앞에 집결했다. 허학봉이 태극기를 휘두 르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자 학생들이 화답하며 독 립만세를 외쳤다. 학생들은 교장의 제지를 듣지 않고 교문 밖으로 진출했다. 주민들이 합세했다. 약 200명 이 된 이들은 “조선독립만세!”를 높이 부르면서 임명 순사주재소 앞에서 맘껏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돌아오는 길에 주도 학생들이 외쳤다. “임명보통학교는 조선총독부가 세운 것이다. 우리 는 이미 독립운동을 한 이상 그러한 학교에 다닐 필 요가 없다. 내일부터는 등교하지 말자!” 학생들은 다음날 학교에 오는 학생 전부를 돌 려 보 냈다. 이들 3명은 재판에 회부되어 보안법 위반죄로 허 학봉 징역 1년, 최국섭·허원용은 각 징역 8월형을 선 고받았다. 12일 저녁 임명 주민 몇 명이 동구 밖에서 모닥불 을 피우고 있다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소 리를 듣고 인근 동리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목이 터지도록 만세를 부 르며 성진 읍내로 나아갔다. 성진경찰서에서 무장 경 찰을 급파했다. 겨우 해산시킨 일제는 임명 읍내에 군대를 상주시켜 군중 봉기에 대비토록 하였다. 3월 11, 15, 19일 학서면 학서면은 성진군의 제일 북쪽에 있다. 학서면 업억 리(業億里) 61세의 농민 김승락(金承洛)은 전국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만 세시위를 하고자 결심했다. 태극기를 준비하고 3월 11일 업억리 자기 마을 주민들을 불러 모았다. 동리 그리어슨목사가 성진에서 길주로 가는 길에 들른 생동 마을(1906.9) 1911~1912년 경 성진의 중류 가정(국립중앙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