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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헌납운동과 애국기 시흥호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쟁물자의 보급과 구입을 위한 헌금 헌납 운동을 읍과 면 단위까지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또한 당시 조선군사령부 산하 "애국부" 에서 벌인 "애국기 헌납운동" 까지 포함, 더욱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헌금 헌납운동이 실시되었다. 1937년 9월 16일의 동아일보 기록에는 시흥군의 각 면으로부터 모금한 국방헌금이 1937년 9월 중순까지 총 5,100원으로 국방헌금 900원, 위문금 1,200원, 군사후원회비 1,500원, 비행 협회비가 1,500원 이었다. 그러나 면 단위의 모금운동 외에도 개인 또는 단체의 헌금을 독려하여 서이면에서는 석수동의 "60세 노파가 계란 판돈 5원을 헌금" 하거나, 호계리 군포농촌진흥회 근로보국 단원 30명의 국방비 헌금, 면내 단체의 황군 위문용 황율헌납 등이 진행되었다. 이와 함께 도,군 단위로 애국기 헌납 운동을 실시하였는데 당시 많은 친일인사들이 앞다투어 비행기를 헌납하였다. 경기도의 경우 1937년 10월 23일 "애국기 경기호 건조를 위한 성금이 7천원에 달하며 시흥 군민의 성금은 1,900원으로 열성에 크게 감격한다!" 라는 동아일보 기사가 있다. 또한 조선 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 1942년 11월 6일과 12월 22일 기사에는 "애국기 시흥호, 팔만군민이 헌납운동" 및 "애국기 시흥호 헌납기금 신청 연일답지" 라는 내용이 있다. 헌납기인 시흥호는 전투기 애국 제1444(경기 시흥) 육군성 이라는 사진 제목의 자료가 있어 실제로 건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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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과 헌납운동의 또다른 사례로 1940년 4월 29일의 서이면장 이기선의 공적조서를 살펴보면 군용물자 조달, 군수품 제조, 공출 및 수리에 각종 곡물과 가축의 가죽 공출, 군인과 군대 전몰자의 위문, 시국강연, 채권과 저축 장려, 국방헌금에 총 1,770엔 모금 등의 공적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국방헌납에 따른 일제의 착취와 수탈이 매우 조직적이고 전국에 걸쳐 행하여졌음을 보여주며 이에 따른 식민지 백성의 삶과 참상이 어떤지를 충분히 짐작케 하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