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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2024년 10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시론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는 1842년(헌종 8년) 1월 28일 경상도 순흥부(順興府) 난곡리, 현재 봉 화군 봉성면 동양리에서 퇴계(退溪) 이황(李滉 : 1501~1570)의 11대손으로 출생하였다. 그리고, 1859년(철종 10년) 문명(文名)을 떨치던 기천(杞泉) 권승하(權承夏)의 딸과 결혼하면서 장인 기천의 문하 에서 수학했는데, 1866년(고종 3년) 9월 정시(庭試)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그가 25세 때였다. 그런데, 이 무렵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 로 폐쇄되어 있는 문호를 열기 위하여 미국‧영국‧ 독일‧프랑스 등 구미의 열강들이 몰려들 때였다. 1866년 1월, 흥선대원군이 조선에 와있던 프랑스 천주교인 9명을 학살함으로써 중국 텐진(天津)에 주둔한 프랑스 함대사령관 피에르 로오즈(Pierre G.Roze) 제독이 군함 3척을 이끌고 양화진을 거쳐 죽음으로 관인의 책임을 다하라는 부친 가르침 실천 1910년 10월 일제 대한제국 강제병합에 단식 순국 순국시론 향산 이만도, 자정순국의 길을 걷다 글  권용우(단국대학교 명예교수) 향산 이만도 선생이 자정(自靖)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필자의 가슴에 찡하게 다가온다. “하루 죽지 못하면 하루 죄인이 되고, 이틀 죽지 못하면 이틀 죄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