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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2024년 9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송나라는 거란 등과 싸우기도 하고 화친하기도 하 면서 지냈다. 그런데 1125년에 거란족이 세운 요나 라를 무너뜨린 여진족의 금나라에게 개봉이 공격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휘종(徽宗) 황제는 제위를 아들 에게 물려 주니, 그 아들이 흠종(欽宗)이다. 흠종은 일단 금나라와 화의를 맺어 급한 불을 껐다. 이때 조정은 주전파와 주화파로 가려 심각한 분열 상을 노출하였다. 황제는 이러한 사태를 수습하지 못 하였고, 1127년 개봉이 함락되면서 아버지 휘종과 함께 금나라로 끌려가게 된다. 역사에서는 이를 ‘정 강(靖康)의 변’이라 부른다. 정강은 흠종의 연호이다. 그러자 흠종의 아우가 황실과 유민들을 이끌고 남 쪽으로 내려가 양자강 유역의 임안(臨安)에 도읍을 정하고 제위에 올라 남송(南宋)의 개국 황제 고종이 되었다. 남송의 조정 또한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뉘 어 갈등이 심했다. 이때 벼슬길에 들어섰던 젊은 학자 호전(胡銓)은 소리 높여 주전론을 전개하였다. 호전에게 주화파들 은 쉽게 북쪽을 내주고 남쪽으로 내려와 자신의 안 위나 돌보는 소인배들로 보였다. 바로 백하의 시에 나오는 윤회라는 두 인물, 즉 왕륜(王倫), 진회(秦檜) 등 집권세력들이 ‘미개한 야만인’들에게 허리를 굽 히는 행태는 참을 수가 없었다. 호전은 이들을 처벌 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호전은 강직한 우국지사 의 표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 시에서 백하는 송나라의 역사가 잘못되 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춘추시대 동호 (董狐)라는 사관이 권력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실 을 그대로 기술했다는 ‘동호직필(董狐直筆)’이 송나 라에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동호직필’에 대해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 의하면 동호(董狐)는 진(晉)나라의 사관이었다. 당시 조(趙)나라의 어진 재 상이었던 조돈(趙盾)은 어리석고 못난 영공(靈公) 임 금의 부당한 처사를 자주 간하였다. 하지만 이를 귀 찮게 여겨 영공이 자객을 보내 그를 죽이려 하자, 조 「題胡澹庵上高宗封事後 호담암의 상고종봉사 뒤에 쓰다」 熙寧遺直此封疏  희녕 연간에 남은 직언 이 상소문 뿐이니 白日堂堂袒死初  청천백일처럼 당당하게 초심으로 죽었도다 萬戮猶輕倫檜首  만 번 죽여도 가벼운 것이 윤회의 머리요 千秋不朽陸楊裾   천추에 썪지 않을 것은 육양의 충절일세 東溟又出先生月  동쪽 바다엔 먼저 떴던 달 다시 떠오르고 西峀應傍餓死墟  서산 어름엔 응당 아사한 선비의 무덤 있으련만 可惜南朝無董史  애석하다 남송조에 올바른 역사서 없음이여 須令公義等休書  만세의 공의가 휴지처럼 버려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