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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2024년 8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을 죽이는 등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다. 마침 전에 헤 어졌던 군사들이 합세해서 적과 접전하였다. 그러나 일시 적에게 포위되었는데, 조경환 의진이 포위망을 뚫고 들어와 두 의진이 연합하여 비로소 적을 물리 쳤다. 1908년 10월, 흩어진 군대를 모으고 장성의 김 기순과 합진할 것을 꾀하나, 서로 군사와 무기를 빌 릴 것을 주장하여 합의치 못하고 헤어졌다. 그 이후 구룡촌 · 대곡 등을 행군하여 영사 재(永 思齋)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광주에서 파견된 일본군 수 십 명의 적과 접전하였으나 패퇴하고 말았다. 남은 군사를 이끌고 순창 · 담양 등을 거쳐 광주 대치(大峙)에서 다시 적 과 대적하여 많은 적을 사살하고 총과 탄환, 군복 등을 노획하였다. 주흥동에 이르러 기우만을 만나 크게 고무를 받 고, 곧 순창 내동으로 가서 접전하다가 적이 불을 질러 후퇴하였다. 다시 함평 유덕산으로 가서 김돈을 만나 전략에 대해 의논하고는 고막의 적 병참을 포위 공격하여 적을 몇 명 사 살하였다. 그러나 선봉장 정원집이 크 게 부상당하였다. 민가에 머물며 10여 일 치료했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전해산은 의병 봉기한 이래 오른팔 역 할을 담당하던 정원집을 잃고 크게 상 심하였을 뿐 아니라, 의진의 사기도 다 소 떨어졌다. 이제 다시 영산강으로 가지 못하면 1909년 1월 17일 몰래 고향에 돌아가 부친께 세 배를 올리고 가사를 처리한 뒤 돌아왔다. 3월 27 일 전해산은 의병을 거느리고 영광을 출발하여 부 안 오동촌에 이르렀을 때 적의 내침을 받아 접전하 다가 많은 사상자를 내고 겨우 포위망을 뚫고 탈출 할 수 있었다. 다시 나주로 돌아와 의병활동이 어려 우므로 부하들에게 일시 휴식할 것을 훈시하고 곧 전해산 의병장의 작전용 지도 병풍(순천대박물관 소장) 전해산 기념관(전북 장수군 번암면 성암길 92, 전북도민일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