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page


91page

안양 조선비행기주식회사 설립 안양 조선비행기주식회사의 설립은 일제강점기말 조선총독부와 대표적인 친일 매판지가 박흥식 (朴興植 1903~1994)에 의하여 설립된 전투 비행기 제작 군수공장으로 안양지역의 주민 강제동원과 수탈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박흥식은 1931년 종로 화신백화점과 1934년 화신연쇄점을 운영하며 당시 '조선 최고의 갑부'로 불렸으나 실제로는 조선총독부와 연계되어 실업계와 경찰, 군부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관계를 가졌으며 특히 식민 착취 기관인 동양 척식주식회사의 감사를 지냈다. 1937년 중·일전쟁(中·日戰爭) 이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및 조선임전보국단 등의 각종 친일단체 이사를 역임하며 기부금 납부와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발표를 하였다. 또한 조선총독부 기관지 대한매일신보에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대동아전쟁 완수에 전력을 바쳐 산업경제인으로 부하된 중책을 명심하고 실천 결의 한다." 는 기고문을 게재 하였다. 1944년 7월 박흥식은 조선총독부로부터 항공기 제조사업을 허가받아 같은해 9월, 회사를 창설하고 다음해 3월부터 안양의 구 대농방직 터에 있던 조선직물과 동양방적을 헐값에 인수, 공장 가동과 함께 평촌지역에 비행장 부지를 계획하였다.
91page

해방 후인 1949년 반민족특별법에 의한 공판 청구 기록을 보면 "공장과 비행장 부지로 농토 2,300여평, 45 만여평에 달하는 토지를 군부 세력을 이용, 강제 몰수하여 250여 지주와 900호에 달하는 농가 4,000여 농민이 농지를 박탈당하고 생로가 막혀 가두에서 방황하여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구 서이면사무소에서 진행된 피해 농가 진술 자료를 살펴보면 각계각층의 면민이 농지 몰수와 강제 노역, 우마차 징용 등으로 착취에 따른 큰 고통이 뒤따랐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박흥식의 만행은 해방 후 반민특위 제1호 검거자로 구속 되었으나 겨우 공민권 2년 정지에 보석으로 풀려나 국민들을 허탈하게 하였고 당시 안양지역의 수탈과 참상에 따른 고통이 어느 정도 였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