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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⑬ 91 한탄만 하게 된다. 누가 이렇게 시켰는가? 분통하고 분통하다. 흰 머리 늙은 나이에 이 어찌 참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평해 살던 이휘영이 와서 문안하였다. 2일 맑음. 우연히 북경(北京)에서 온 신문을 보았는데 혁명 공화정이 이미 막기 어려운 기세가 되었나 보다. 옹 손병경(饔飱幷耕=어진 자는 백성과 함께 농사짓고 손수 밥 지어 먹는다. 맹자)의 정치는 비록 이것이 상고 시대의 순박한 풍속이었다고 하지만, 4천 년 군주제의 끝에 비풍하천(匪風下泉)의 느낌이 없을 수 없다. 3일 맑음. 아침에 안주인이 메밀떡 한 접시를 가지고 와서 주 었다. 모르긴 해도 여자들은 정에 약하여 늙고 쇠약 한 내가 가여워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보답할 물 건이 없으니 한스럽다. 김달, 장유순, 윤기섭, 이규봉 등이 와서 새해 안부를 물으니 고맙다. 한낮 무렵에 강남호와 이정언[법흥 살던 사람]이 생질 이 아무개가 쓴 걸미첩(乞米帖)을 가지고 와서 그의 며느리와 안식구의 기별을 전한다. 쌀이 옥보다 귀하다는 탄식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인가? 독을 다 비 워 쌀 닷 되와 벼 한 말을 보냈다. 듣건대 이덕기가 들어왔는데, (중국) 국내에 전쟁 기운이 날로 심해져서 하루에 의인(宜仁)과 토계(兔 溪) 두 집안과 역동(易東)의 이맹현이 차례로 뒤따른 다. 집안 조카도 이번 달 내로 길을 떠날 것이라 한 다. 한 쪽은 임무가 중한 경우이고, 한 쪽은 빈손으로 막차를 타는 경우이다. 일일이 마음이 쓰여 잠자고 먹는 일이 다 달지가 않다. 독립운동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김대락의 아들 월송 김형식 김대락의 집에 자주 출입했던 이상룡의 아들 동구 이준형 초상화 (이상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제공) 새해 인사차 김대락의 집에 세배를 왔던 이동녕(한국학중앙연구원). 뒷날 임시정부에서 큰 활약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