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page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⑨ 91 을 뵈었고, 또 인척 숙부 이장기를 만났다. 25일 흐림. 날이 심하게 춥지는 않아 쌓였던 눈이 녹고 풀려 거의 사라지니 다행이다. 다만 언 땅이 질척거려서 학교를 오가기가 매우 어렵고 힘들다. 26일 눈 비. 이장녕이 와서 잤다. 27일 또 눈. 소학교에서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매번 보건대 살림살이는 한결같이 군색[하다]. 가 진 자산이 또한 전대와 항아리를 거꾸로 털 지경이 되었다. 며늘아이가 원망하는 뜻을 한 마디도 하지 않으니 한 편 위로가 되고 한 편 한탄스럽다. 28일 이계(伊溪=현재 안동시 와룡면 이하리)의 정아무개와 김아무개 두 사람이 와서 고향 소식을 전 해주었다. 따로 놀라운 소식이 없으니 위로가 된다. 29일 맑음. 이형국과 윤인보가 오는 편에 문극이 어버이를 뵈 러 간다는 기별을 들었다. 이제부터 병든 누이의 조섭 과 간호에 편의가 생길 것이니 매우 마음이 놓인다. 30일 맑고 추음. 꿈에 아버님을 뵈었다. 내 편지를 보시고 대략 장 려하고 허여하는 말씀이 있었는데, 소홀히 하여 자세 히 기억할 수 없으니 한스럽다. 이문형이 와서 잤다. 「호담암의 상고종봉사 뒤에 쓰다(題胡澹庵上高宗 封事後)」를 살펴본다 1911년 9월,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기도 하면서 백하는 선비의 본분을 잊지 않고 있었다. 외 롭고 궁색한 생활 속에서도 백하는 책을 읽었고, 시 를 쓰면서 자신의 심사를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오 늘은 먼저 이때 백하가 지은 시 한 수를 같이 읽어가 면서 당시 백하의 심정을 느껴보고자 한다. 시의 제목이 「호담암의 상고종봉사 뒤에 쓰다」이 다. 무슨 의미일까? 호담암이란 사람이 송나라 고종 (高宗)에게 올린 상소문 뒤에 쓴 글이란 의미이다. 중 국 송나라 때에 호전(胡銓 1102~1180)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의 호가 담암(澹庵)이다. 송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이 개봉(開封)을 수 도로 나라를 세운 후 160여 년간 송나라는 학문과 예술이 크게 융성하였다. 경제적 풍요와 문화적 성 취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북방 민족들의 공격은 근 심거리였다. 김대락의 집에 자주 왕래했던 이동녕(1869~1940)과 이장녕 (1881~1932),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국가보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