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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⑧ 91 전해산은 그 해 겨울 이석용과 같이 전북 남원에서  거의(擧義)하였다. 이들보다 일찍이 호남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고광순이 적에게 전사되고, 기삼연이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그 역시 체포되자, 그 산하 의 병들은 김태원 휘하에 통솔되고 있었다. 이에 해산 은 이석용에게 김태원과 연합할 것을 건의했다. 김 태원을 뒤쫓아 장성에 이르니 김태원 역시 순국하였 기에 오성술과 연합하여 나주 도림에 주둔하였다가,  사천 등지에서 적병과 교전하였다. 한편 김태원의 선봉장이었던 조경환이 의병장이  되어 독자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해산을 의병 장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극구 사양하 였다. 1908년 6월 광주에서 모군하고 있는데 정원 집이 부하를 거느리고 찾아와 부하되기를 청하였고,  계속 세력이 확장되었으므로 부하들의 추대를 받아  의병장이 되어 의진을 다시 구성하니, 그 진용은 다 음과 같았다. 선봉장 정원집(鄭元執) 호군장 박영근(朴永根) 중군장 김원범(金元範) 도포장 이범진(李凡辰) 후군장 윤동수(尹東秀) 격문을 지어 원근에 돌리고 수하 장령들에게  특히  민폐를 끼치지 말 것을 엄명하고 군령을 엄히 하였 다. 적병과 전투하는 한편 친일 무리, 그 중에도 일진 회원들을 경계하여서 김원범 등에게 명하여 일본인 에게 의병에 관한 정보를 넘겨주던 두 명을 총살시 켰다. 영광 불갑산 전투 첫 전투는 영광 불갑산 전투였다. 1908년 7월 25 일 삽시간에 적에게 포위당하자, 선봉장이 천보총을 쏘아 두어 명을 사살하고 곧이어 선치(蟬峙)에 매복 하고 있다가 적을 유인하여 기마병들을 죽이고 무기 를 빼앗았다. 1908년 9월, 도림(道林) 일대에 머물고 있었는데 대봉산 일대에 적병들이 운집하여 총성이 들렸다. 9 월 29일 나주 석문동에 이르러 조사해 보니 전날 조 경환이 일본 경찰 순사대장을 죽였기 때문에 적병들 이 거문돌(黑石) 윗마을에 불을 지르고 함부로 사람 전해산 의병장 생가 마을 (전북 장수군 번암면 대론리)  전해산 의병 부대의 고마원 전적지를 오용진 선생(작고)이 가리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