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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③ 91 정원하(鄭元夏) 공(公)에게 들르고 싶었는데, 거의 가상(街上)에 이르러서 아이들을 보고 물었더니 그의 집을 돌아보며 ‘이미 몇 걸음을 지나쳐 왔다’고 한다. 다리가 피곤하여 길을 돌아가기 어려울 뿐 아니라, 또 백사(白沙=이항복) 선생의 후손, 위수(衛率=종6품 벼슬) 이아무개가 지금 내 처소에서 기다린다고 한 다. 곧장 집으로 돌아오니 그의 나이가 벗 삼을 만하 다. 마침내 저녁 내내 마음을 터놓으니, 초(楚)나라 포 로처럼 마주 우는 정경이 아님이 없었다. 이공이 드 디어 단가 한 마디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비분 강개 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고 향 생각과 고국을 떠난 한이 정서에 닿아 더해지니, 백발 나그네의 괴로운 망명 생활이 어느 때나 그치겠 는가? 큰 비가 연일 내려 발 디딜 곳이 없다. 다만 백 방으로 만류하였지만 기어이 집으로 돌아 갔다. 비록 앞으로 만날 기약이 있다고 하나, 손님을 보낼 때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매우 서운하고 아쉽다. 27일 흐리고 춥다. 강물이 갑자기 불어 황토물이 콸콸 흐른다. 다리가 끊어지고 배가 위태롭다 하여 가상(街上)의 학교장이 이 때문에 정학(停學)을 했다. 29일 조금 갬. 집에 온 손님 김씨와 윤씨 두 벗이 아이들과 함께 산에 올라 달래를 캐왔다. 고춧가루로 무치고, 간장 에 버무려 먹으니 찬이 싱거워 괴롭던 차에 위장을 펼 거리로 알맞다. 30일 앞산에서부터 뭇 봉우리를 밟아 사방을 둘러보았다. 산세가 험준하니 아마도 백두산 아래 첫 동네인가 보다. 사람들이 본 데 없이 무례하고 어리 석은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우연히 보게 된 참꽃 한 떨기가 산꼭대기 양지바른 곳에 반개(半開) 해 있는데, 모든 나무가 아직 싹트기 전이니 이는 기 이한 볼거리이다. 서쪽의 풍토가 또한 춥고 음산하기 때문일 터인데, 가만히 고향의 복사꽃, 살구꽃을 따 져보니 이미 지금쯤은 시들었을 것이다. 사물을 본 흥취가 과연 지금 나를 두고 일컬은 말인지?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경제학 ·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율곡 연구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 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감사를 맡고 있다.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풀어낼 지혜를 지나간 역사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면암 최 익현 선생의 5대손이다. 필자 최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