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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의 독립 만세 운동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항하여 자주적인 민족주의 발로에 따라 시작된 1919년 3.1만세 운동은 각계 각층과 전 국민의 참여 속에 전국적으로 확산, 전개되었다. 이러한 만세 시위운동은 내부적으로 자주적인 근대민족주의 운동에 시발점이 되었으며 대내외적으로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 표방과 반식민지의 민족운동에 강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3.1 만세 운동과 관련한 당시의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시흥군 지역은 1919년 3월 27일부터 31일까지 각 면단위로 활발한 만세 시위 운동이 펼쳐졌다. 안양의 경우 3월 27일 비산리에 사는 이영래와 주민이 모여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3월 29일에는 박달리 주민 80여명, 석수동 주민 300여명, 안양리 주민 100여명의 만세 시위가 있었다.
그리고 3월 31일에는 호계리 군포장에서 인근 주민 2,000여명이 모여 만세 운동을 펼쳤으나 경찰과 군대가 동원되어 시위를 저지후 해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매우 격렬한 시위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당시 안양지역의 항일 운동과 전개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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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지역의 만세 운동
지역명 일시 시위내용
안양시 1919.3.27~3.31 비산리 및 박달리, 석수동, 안양리, 호계리 군포장의 2,000여명 만세 시위운동
광명시 1919.3.28~3.29 서면 노온사리 주재소 및 소하리에서 300여명 만세 운동
과천시 1919. 3. 30 남태령에 주민 100여명이 모여 읍내로 행진하며 만세 운동
안산시 1919. 3. 30 수암면 주민 2,000여명이 면사무소 앞에 모여 만세 운동
군포시 1919, 3. 31 군포역 주재소에서 인근 주민 2,000여명 만세 운동
의왕시 1919. 3. 31 주민 800여명이 경찰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둘러싸고 만세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