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page

90 2024년 11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시론 민영환, 순국을 선택하다 이러한 광경을 지켜본 민영환의 심경이 얼마나 착 잡하였겠는가. 답답한 심경을 억누르며, 고종황제의 유시(諭示)를 떠올렸다. “경들의 충성스러운 말을 어 찌 모르겠는가. 이미 여러 번 유시하였으니, 곧 물러 가거라!” 더 이상 기울어져가는 대한제국을 일으킬 수 없음 을 깨닫고 궁궐을 나와 서대문 밖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되돌아 나와 마지막으로 비장한 결 심을 하였다.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안타깝게 생각하 면서, 2천만 동포와 마지막 이별을 고할 각오를 다졌 다. 순국의 길을 선택하였다. “아! 슬프다. 나라의 수치와 국민의 욕됨이 이에 이 르렀으니, 우리 민족은 장차 생존경쟁에 진멸(盡滅) 되고 말 것이다. 모름지기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반 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한 사람은 도리어 살게 됨 을 여러분들은 어찌 알지 못하는고? 영환은 이제 한번 죽음으로써 황상(皇上)의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 2천 만 동포형제들에게 사죄하노라. 그러나, 죽어도 죽 지 않고 저승에서라도 여러분들을 기어이 도우리니 우리 동포형제들은 더욱 분투 격려하여 지기(志氣)를 굳게 하고, 학문에 힘쓰며 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우리 자유독립을 되찾는다면 죽은 몸도 마땅히 저 세상에서 기뻐 웃으리라. 아, 조금도 실망하지 말지 어다! 우리 대한제국 2천만 동포에게 이별을 고하노 라!” 이는 민영환이 순국하면서 2천만 동포에게 남긴 피맺힌 유서이다. 우리 대한제국의 자유독립을 바라 는 그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마디마디마다 그 의 애국충정과 동포애가 배어 있다. 이 날이 1905년 11월 30일이었다. 민영환의 순국 소식은 삽시간에 온 백성들에게 전달되었다. 남녀노 소가 모두 통곡하였다. 그리고, 잇달아 많은 우국지 사들의 순국이 이어졌다. 전 의정대신 조병세, 전 참 대한제국 시종무관장 시절의 민영환 민영환이 명함에 쓴 유서(이상 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