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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주벌의 별이 되어 ▶ 1921년 6월 자유시 참변을 겪다 홍범도 장군은 1920년 6월 7일 북 간도 봉오동에서 일본군 19사단 소속 야스가와 소좌 휘하 부대를 격멸하고 1920년 10월 청산리 대첩 참가. 김좌 진과 공동 작전을 전개하여 완루구 어 랑촌 전투에서 일본정규군을 대파하 였다.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치욕적인 패 배를 당한 일본군이 계속해서 추격해 오자 독립군은 대한독립군단을 조직 하였고, 홍범도 장군은 부총재에 선임 되었다. 김좌진·최진동 부대와 함께 노령으로 이동, 흑룡강 자유시를 새로 운 근거지로 삼고 러시아군과 교섭하 여 협조를 얻었다. 그러나 러시아 공 산당의 배반으로 무장해제 된 뒤 많은 독립군이 사살되거나 포로가 되는 등 이른바 자유시 참변을 겪게 된다. ▶ 항일독립전쟁의 선봉에 서다 1896년 의병들을 이끌고 함경 남도로 이동하여 유인석 의병부 대에 합류하였으나 을미의병의 해산으로 포수로 위장하고 일제 의 추적을 피해 산포수 생활. 1907년 군대의 해산에 항거 하여 정미의병에 참전하여 홍 범도는 함경도 갑산 신포계의 신포수 중심으로 의병을 조 직하여 12월에 삼수 전투에서 일본군 갑산 수비대를 궤멸시 키는 등 대소 37회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국내에서 무력 투쟁에 한계를 느끼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였다. 봉오동 전투유적지 입구 (길림성 도문시 봉오동 저수지)봉오동 전투 유적지 ▶ 봉오동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다 항일무장독립전쟁의 횃불을 들었던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7일, 중국 길림성 왕청현 봉오동에서 독립 군의 연합부대와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서 일 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200여 명을 부상시킨 큰 승리를 거두었다. 두만강 삼둔자(간평마을) 삼둔자 전투 유적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洪範圖) 장군 홍범도, 1868년~1943년) 의병장, 독 립운동가. 1895년 을미의병 당시 강원 도 철령에서 의병을 일으킴 1910년 만 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으며, 1920년 6월 북간도 봉오동 전투에서 대 승을 거두었다. 1920년 10월 화룡 청산 리 대첩에서 북로군정서 김좌진과 함께 참전하여 일본군 대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