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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2023년 7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석주의 「망명일기」 다섯번째 시간에 우리는 1911년 2월 22일부터 29일까지 8일간의 기록을 읽어본다. 이 시기에 석주는  항 도천에서 유하현으로 옮겨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하현에서 펼칠 독립투쟁의 방향을 깊이 고민하면서 석주는 한편으로 는  우리 역사에 심취해 있었다. 석주의 역사인식을 그의 일기를 통해 살펴보자.   선열일기 | 석주 이상룡의 서사록 ⑤ “지금 노예사관으로 백성을 가르치고 있으니,  어찌 참담한 지경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이주 도중 우리 역사 탐독, 주체적 인식과 평가 놀라워 글  최진홍(월간 『순국』 편집위원) 22일 『숙신사肅愼史』를 읽었다. 대개 만주의 여 러 나라 중 숙신이 가장 오래 되었는데, 구이(九夷)의 하나이다. 그 경계는 남으로 장백산(長白山)을 둘러싸 고 북으로 흑룡강에 이르며, 동으로 대해에 미치고 서 로 관만국(冠漫國)에 닿는다. 이른바 관만은 어느 부 락인지 알지 못하나, 대해는 아마 일본해를 가리키는 듯하니, 너비와 길이가 수천 리이다. 지지(地誌)로써 고증하면, 길림성과 흑룡강성 지경이요, 발해의 상경 (上京)이 바로 그 옛 성이다. 곧 지금의 영고탑(寧古塔) 이다. 살펴보건대 단군은 구이의 우두머리이니, 숙신은 그 속국일 것이다. 또 『한서』와 『진서』에 모두 이르되 ‘숙신은 일명 읍루(挹婁)인데 부여(扶餘)에 신속(臣屬) 하여 조세를 바쳤다’고 한다. 소위 부여는 고등왕(高登 王)이 도읍한 곳이니, 단씨(檀氏)의 신속이 된다는 것 은 더욱 확실한 근거가 있다. 따라서 왜국 또한 구이 의 하나임을 생각하면, 똑같이 단군의 속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작년 겨울의 일이 기억난다. 내가 우리 역사를 초략 하고 있을 때 마침 일본 순경 기원달(箕元達)이 조사차 찾아왔다가 내게 단군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대답하 기를, “우리나라 시조이다”라고 하니, 그가 “공이 잘못 안 것이 아닙니까? 이는 우리나라의 천신(天神)시대의 첫 임금으로 지금도 일본고사에 실려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 사람이 거짓으로 망령되이 대답할 이치가 없 다면, 또한 우리에게 신하로서 복속한 나라의 하나였 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3일 『부여사扶餘史』를 읽었다. 『만주원류고 滿州源流考』에 이르기를 “부여의 옛 나라는 두막루 (豆莫婁)이니, 물길(勿吉) 북쪽 천 리에 있었다”고 하 였다. 『만주지지滿州地誌』에는 “부여가 처음 북쪽에 서 나라를 일으켰을 때는 읍루(挹婁)와 인접하여 있었 는데, 점차 남으로 내려와 드디어 개원(開原) · 성경(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