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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2023년 5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나도 없어 밤 2경이 가까워서야 사전참(沙田站)에 투 숙하였다. 6일 사방이 흙탕길이어서 수레가 지나다니기 에 매우 어려웠다. 길가에 때때로 한인(韓人) 사냥꾼이 총을 메고 오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대개 우리나 라는 군부(軍部)가 해산된 이후로 집안에 짧은 총 한 자루를 둘 수가 없는데, 더구나 몸에 휴대하고서 마음 대로 길을 다니니 실로 근래에 처음 보는 모습이다. 그 족쇄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광경이 반갑다. 저물 무렵에 운문산(雲門山) 아래에 도착하니, 객 점이 초라하고 누추하여 바깥문만 있고 안벽이 없다. 옥사 안 좌우에 갱(坑, 일종의 온돌)을 축조하고 그 위 에 앉고 눕는데, 취사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갱 바닥 의 아궁이에 불을 때게 하여 추위를 막는다. 변소를 설치하지 않아 더러운 오물이 마당에 그득하니, 대개 만주인의 가옥 제도가 모두 이와 같다. 7일 새벽 첫머리에 출발하였다. 길가의 돌무 더기 위에 왕왕 썩은 관(棺)이 드러나 보이는데, 관의 모양이 높고 짧다. 아마도 오랜 옛날 골짝에다 버리 던 풍습을 지금까지도 고치지 않은 모양이다. 옛날 살만(薩滿) 교도들은 사람이 죽으면 나무 위에 장사 하였다. 혹 큰 나무의 줄기를 골라 거기에 구멍을 파 고 시신을 안에 넣었는데, 아마도 이 또한 살만교를 신봉하는 자들이 한 일일 것이다. 냇물을 따라가다가 10여 리쯤에서 산기슭이 트이 고 시야가 넓어진다. 멀리 숲 사이로 지붕 모서리가 들쭉날쭉 보이니 그곳이 항도천(恒道川)임을 알겠다. 한인 심택진(沈宅鎭)의 집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마 부를 돌려보냈다. 조금 있자니 김형식(金衡植), 황도영(黃道榮), 이명 세(李明世), 정생(鄭生) 같은 여러 사람이 이어 보러 왔다. 정생은 곧 예천 사람 진사 정운경(鄭雲卿)의 아 우이다. 내가 정운경과 비록 면분은 없으나 그 명성 은 대개 일찍부터 들어왔는데, 이역에서 그 아우를 만나게 되니, 더욱 자별함을 느끼겠다. 오후에 김비서장(金賁西丈=김대락. 비서는 김대락 의 호이다)이 계신 곳을 찾아갔다. 이 노인이 일전에 손자를 본 경사가 있어 한편 위문하고 한편으로는 하 례하니, 기쁘게 반기는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거처 하는 집은 모두 7간인데, 황군과 이군이 각각 한 방씩 쓰고, 중앙에는 또 학교를 열어 많은 사람들이 기거 하고 있어 매우 거처하기 군색하다. 그러나 처음 도 착하고 보니 창졸간에 달리 방편이 없어 부득이 학교 한 간을 빌려 식구들을 머물도록 하였다. 이상에서 우리는 국경을 넘은 석주 일행이 항도천 으로 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 일기에는 나라를 잃은 자들이 산설고 물설은 이국 땅에서 겪는 고난의 감성이 녹아 있으며, 먼저 와 있던 혁명 동지들과의 김대락의 『백하일기』를 번역한 『국 역 백하일기』(경인문화사, 2011) 이상룡을 마중나온 김형식의 노 년기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