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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에서 최초로 시작된 예산군의 3.1만세운동 예산군의 3·1만세운동은 충청남도 지역에서 가장 빠른 시기인 3월 3일에 일어났다. 1919년 3월 3일 오후 5시경 이발업을 하는 윤칠영(尹七榮)과 친구 4명은 예산읍 권경화(權敬和)의 집에서 모임을 갖고, 이어 오후 8시 30분경부터 예산읍 요리점 '명월관(明月館)'에서 "일본의 경성지역 유학생 및 기타 학생들이 단결하여 성대히 한국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오후 11시 30분경 예산읍 동쪽 산 위에 올라가 독립만세 를 외쳤다. 이것이 충청남도 최초로 전개된 만세운동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예산군의 3·1만세운동은 5월 8일 헌병 보조원을 응징하기까지 67일의 기간 동안 최대 21,000명의 지역주민이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흥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만세운동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지역적 기반을 갖고 있던 3~40대의 중장년층이 주도 하였으며, 시장터와 마을 인근 야산을 중심으로 횃불만세운동 을 전개하는 등 특징적인 양상을 나타냈다. 특히 3월 31일 예산읍내 시장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확대된 3·1만세운동은 4월 3일부터 4월 5일까지 3일간의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는 점도 예산군의 특징적인 모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제의 국권 침탈에 지역 주민이 자발적으로 극복하겠다는 거국적인 독립운동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