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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칼럼 ➊ • 근우회(槿友會)운동과 그 역사적 의의 9 1927년 4월 26일 각계각층의 발기인 40명이 모여 민족협동전선의 흐름에 호응하는 전국적 여성운동 조직을 위한 발기총회를 개최하여 여성계도 하나로 통합되었다. 근우회 「발기취지서」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운동이 개시된 것이 오래이나 조선에서의 운동 은 분산되어 있었고 통일된 목표와 지도정신이 없었 던 고로 운동의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우 리가 우리 자체와 우리사회를 위하여 분투하려면 우 선 조선자매 전체의 역량을 견고히 단결해야만 한 다”고 강조하였다. 이 취지에 따라 5월 27일 근우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창립대회에서 ①조선여자의 공고한 단결과 ②조선 여자의 지위향상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선언문을 통 해 근우회운동의 방향과 정신을 천명하였다. 그 선언문에서 “조선에 있어서는 여성의 지위가 한층 저열하다. 미처 청산되지 못한 구시대의 유물이 오히려 유력하게 남아있는 그 위에 현대적 고통이 겹 겹이 가하여졌다. 그런데 조선여성을 불리하게 하는 각종의 불합리는 그 본질에 있어 조선사회 전체를 괴 롭게 하는 그것과 연결된 것이며 한걸음 나아가서는 전세계의 불합리와 의존 합류된 것이니 문제의 해결 은 이에 서로 관련되어 따로따로 성취될 수 없게 되 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해방을 위하여 분투하는 것은 조선 사회 전체를 위하여, 나아가서는 세계 인 류 전체를 위하여 분투하게 되는 행동이 되지 아니하 면 안 된다.… 그러나 일반만을 고조하여 특수를 망 각해서는 안 된다…”고 단체의 방향을 밝혔다 선언문의 ‘특수성’이란 식민지 조선여성뿐 아니라 조선 민중 일반이 겪는 제국주의 치하의 고통과, 그 에 더해 여성들에게는 봉건적 유제(遺制)로 인한 불 합리한 제도 및 인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불합 리는 본질상 조선사회를 괴롭히는 것, 즉 일제식민통 치와 연결되어 있고 또한 전세계의 불합리와도 의연 히 합류되는 것임을 간파하고 있다. 이 특수한 현실 을 타개하기 위해서 전조선 여성이 단결하여 항일운 동과 여성해방운동을 동시에 전개해야 한다는 선언 이었다. 1927년 5월 27일 경성(서울)에서 열린 근우회 창립총회(『조선일보』  1927.5.29) 『근우』창간호에 실린 ‘근우회선언’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