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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기념관 벗집
이 집은 서울에 들어온 서양인들이 서대문 일대에서 홍파동 사직동 행촌동 언덕을 따라 지은 20세기 초기 양식 건물 중 하나다. 창이 여럿 달린 이층집을 건축한 건 미국 남감리교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배화학당을 세웠다. 지금 배화대학 자리는 원래 이항복 집터였다. 이를 필운대라고 하는데 이항복이 새겼다는 각자가 바위에 굵게 박혀있다.
우당 이회영선생은 경주이씨 백사공파다. 백사공이란 바로 이항복 선생을 말한다. 이회영은 항일무장독립투쟁 기지를 건설코자 서울을 떠나기에 앞서 백사 할아버지께서 임진왜란을 맞아 왜인들과 싸웠듯 우리 가문은 그 뜻을 이어가야 한다고 여러 가솔들앞에서 말했다. 남산에서 자리를 옮겨 온 이회영기념관은 이회영 가문으로 보자면 할아버지 영역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 공간 이름은 벗집이다. 이회영기념관 사랑방으로 시민 벗집이다. 벗집이란 이회영선생 아호 우당(友堂)을 풀어쓴 말이다. 우당은 한 생을 벗들을 위하여 살았다. 그에게 벗이란 가깝게는 아는 사람들이요, 신흥무관학교 학생들과 항일독립투사들이자 넚게는 우리 겨레붙이였다. 하물며 아시아에서 식민지로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이들이기도 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위아래가 없는 사람이었고 한 치도 군림하는 법이 없는 다감한 벗이었다. 이 벗집에 따뜻함이 머문다면 이는 저 근원에서부터 우당 선생에게 빚진 것이다.
이회영기념관으로 새로 태어난 이 집은 건축 역사로 봐도 풍부한 내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뜻 또한 함께 기억하고자 이회영기념관에서는 터를 새로 닦으면서 오래된 이 양식 건물에 '사직동 언덕 묵은집'이라는 별칭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