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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컬럼 • 맥아더도 중요했지만 한국인 역시 중요했다 9 팔미도는 옛날식으로 말해 약 2만3천 평 정 도의 작은 섬으로 인천 연안부두에서 약 16킬 로미터 떨어져 있는 사실상의 무인도였다. 16 킬로미터라면 경인철도가 32킬로미터임을 감 안할 때 그 중간 정도의 지점임을 말한다. 오늘 날 행정구역으로 인천광역시 중구 무의동 소속 이다. 이 섬의 등대는 대한제국 시대이던 1903 년 6월에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졌다. 글자 그 대로 유서 깊은 등대이다. 팔미도작전 성공시킨 한국인 특수임무대원 들, 월미도 주민들 희생도 커 당시 맥아더 원수의 특명을 직접 받았던 계 인주 대령 그리고 켈로부대의 최규봉 부대장의 회고에 따르면, 대원들은 9월 14일 미명에 팔 미도에 상륙하고 지정된 시간에 등대의 불을 켬으로써 맥아더가 지휘하는 10만 병력과 함 정 261척이 비어수로(飛魚水路)를 통해 인천에 당도할 수 있게 했다. 달리 말해, 한국인 유격대 원들의 목숨을 건 희생적 작전은 맥아더 원수 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바탕이 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뒷면에 는 인천항에 근접한 월미도 사람들의 비극이 있다. 북한군이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저항 을 계속함에 따라 월미도에 대한 유엔군의 네 이팜탄 폭격이 뒤따랐고 적지 않은 인명의 희 생을 가져왔다. 이때 월미도를 떠나 피난길에 올랐던 무고한 주민들은 이후 오랜 기간에 걸 쳐 ‘실향민’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한국인의 도움을 받고 다 른 한편으로는 한국인의 희생을 낳은 인천상륙 작전의 성공을 통해, 맥아더 원수는 적어도 한 9월 15일 인천항 수로 및 팔미도 근해에서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시연행사에서 상륙돌격장갑차(KAAV)가 연막탄을 쏘며 상륙해 안으로 돌격하고 있다(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