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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⑫ 89 재기가 유하현(柳河縣)으로부터 와서, 집 아이가 공 무(公務)와 전지(田地) 일 때문에 그 현에 머물러 있다 며, 소매에서 작은 편지 한 통과 편강 한 덩어리를 내 어 주었다. 그 편지는 손자에게 보내고, 생강은 나에 게 보내는 것이었다. 송사(訟事)의 대체는 이미 바로 잡혔으나, 아직 판결이 날 기약이 없으니, 주객의 형 세가 또 사리(事理) 바깥에 있음을 알겠다. 무리들 중 에 유독 현명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가련하다. 13일 손자 아이가 다화곡의 집과 땅을 알아보 더니, 값이 150원이라고 한다. 영근이 소를 끌고 가 서 땔나무를 실어 왔다. 이명선이 소를 빌려 갔다. 15일 생질 이준형이 점심 무렵에 왔다가, 그 길 로 학교로 갔다. 저녁에 이의중, 이상룡, 황도영이 와 서 잤다. 황의영이 저녁밥을 먹고 떠났다. 16일 오늘은 연말총회(年末總會)이다. 이곳에 온 지 반년 만에, 일원의 자격으로 참석한 것은 외인 의점(外人疑點=외국 사람, 즉 조선인들이 무단으로 월경하여 땅을 점거하려 한다는 헛소문)의 낭설이 파 다하였기 때문이다. 지팡이를 짚고 억지로 가서 저녁 내내 참석하여 들으니,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이상 룡의 지휘에 따랐다. 이는 그가 사장인데다가, 더욱 새로운 시대의 조류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인 사람이 백 명 가까웠으나 자리가 질서 정연하고 경건 하여 태만히 할 수 없었다.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다가 발을 삐어 넘어지는 횡액을 당했다. 이제 근력이 이러하니 다시 어찌 돌 아가 고향 산천을 볼 날이 있겠는가? 딱하고 서글픈 느낌이 아마 이 몸이 없어져야 그칠 듯하다. 한탄스 럽다. 저녁이 또 18일에 와 달라는 뜻으로 청첩을 하였 으니, 비로소 ‘이호(彝 好)의 본성’(=사람의 타고난 선 한 심성)은 사는 곳에 따라 다르지 않음을 알겠다. 다 만 체질을 이미 바꾸고 의관과 복제를 달리하였으니, 이것이 통탄스럽다. 그러나 모두가 망국의 슬픔과 복 수의 다짐일 것이니, 천년 이후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을 떨어뜨리게 할 것이다. 집의 아이도 임원 명단에 있다고 하는데, 돌아올 기일이 이미 넘었는데도 다시 아무 소식이 없다. 아 마 이는 소송이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아, 그곳을 비워 둘 수가 없어서일 것이다. 아녀자들을 연고도 없는 궁벽한 산중에 두고 홀로 어질다하여 공무에 애쓰는 것이 자기 밭은 버려두고 남의 밭을 맨다는 조롱을 받기에 알맞지 않은가? 딱한 일이다. 저녁에 생질 이문극이 와서 자며 초(楚)나라 포로 들처럼 마주 앉아 울었다. 형편이 가여우면서도 겨울 은 이미 다 가는데 몸담을 곳조차 없으니 한탄스럽고 한탄스럽다. 18일 [입춘이다] 바람이 불고 추움. 학교의 연말시험과 진급에 따른 시상식에 가 보 았다. 본과 학생의 반장과 우등생은 다섯 명이고, 소 학 과정 학생의 반장과 우등생은 네 명이었다. 어린 손자 정로가 반장과 우등생이 되어 상을 곱절로 받 았는데, 공책 한 권, 연필 열자루, 모필 한 자루, 양지 (洋紙) 여덟 장과 연필 여섯 자루, 철필 한 자루, 먹 한 개, 고무지우개 하나, 모필 한 자루, (성경의) 출애급 기(出埃及記) 한 권이다. 당장의 득실이야 그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