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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시론 • 순국의 상징, 충정공 민영환 89 이렇게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나라 사정이 이 지 경에 이르게 되자, 시종무관장(侍從武官長) 민영환 (閔泳煥)은 전 의정대신(議政大臣) 조병세(趙秉世)와 함께 토역(討逆) · 파약(破約)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 고, 11월 26일 민영환과 조병세는 궁내부 특진관 이 근명(李根命)을 비롯한 이유승(李裕承) · 이건하(李乾 夏) · 민영휘(閔泳徽) 등 백관을 이끌고 입궐하여 박제 순 · 이지용 · 이근택 · 이완용 · 권중현 등 ‘을사오적’의 처 형과 조약의 폐기를 주청하였다. 이들의 주청(奏請)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 나, 민영환은 이에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소 두(疏頭)가 되어 이근명 · 전 참찬 최익현 · 종묘제조(宗 廟提調) 윤태흥 · 법부주사 안병찬 · 승지 이석종 등과 간곡한 상소를 올렸다. 그 뒤를 이어 전국 유림들의 상소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들의 우국충정도 허사 였다. 11월 18일, 을사늑약이 체결된 사실이 세상에 널 리 알려지면서 민중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거 리마다 상가를 철시하고, 각급 학교도 교문을 닫았 다. 그리고, 11월 20일 『황성신문』 사장 장지연이 을 사늑약을 비방하는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 哭, 이 날에 목을 놓아 통곡하노라)”라는 제목의 논설 을 발표하였다. “지난 번에 이토(伊藤博文)가 한국에 오매 우리 인 민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토는 동양삼국이 정립(鼎立) 하여 안녕하기를 맡아 주선하던 인물이니 …… 천하 의 일은 예측하기 어렵도다, 천만 뜻밖에도 오조약 을 어떤 연유로 제출하였는고? …… 아아, 개‧돼지 새끼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라는 것들이 …… 나라를 팔아먹은 적(賊)이 되기를 서슴치 않 았 으니 4천년 강토(疆土)와 5백년 종사(宗社)를 남에게 바치고 2천만 생령(生靈)들을 남의 노예로 만들었다. ……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졸연히 멸망 하고 말았구나. 아프고 아프도다. 동포여, 동포여!” 이를 읽고 통쾌해 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었겠 는가. 그리고, 경향(京鄕) 각지에서 살왜(殺倭)를 외 치며 항일의병이 불꽃처럼 일어났다.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논설(『황성신문』1905.11.20, 독립기 념관 제공) 을사늑약과 한일강제병합조약 에 앞장선 이완용(한국학중앙연 구원 제공). 대표적 친일매국노 이다. 장지연 초상화와 자필 제명(題 名, 나무위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