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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⑩ 89 의 전투 상황이 일제 당국이 편찬한 『전남폭도사』에 다음과 같이 남아 있다. “법성포주재소, 영광, 고창, 무장분파소가 합동으 로 수색하여 고창군 문수사에 웅거 하는 수괴 기삼연 외 그 부하 50명 을 공격했으나, 총격전 끝에 탄환 이 떨어져 퇴각하였다.” 문수사 야간전투에서 크게 공을 세운 김태원은 그 기세를 몰아 고 창, 법성포, 장성, 영광, 함평, 담양 등지를 차례로 점령하여 의병 항쟁 의 맹장으로 이름을 드높였다. 무동촌 승첩 1907년 11월 20일, 장성 백양사 약사암에서 김태원 선봉장이 기삼 연 의병장과 향후 전략을 협의했다. 이들은 전투력 극대화를 위해 호 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 연 합 의진을 둘로 나누기로 결정하였 다. 그때부터 김태원은 호남창의회 맹소에서 독립하여 함평·영광·나주 등지를 돌며 수백의 의병을 모은 뒤 다시 동생 김율과 부대를 나누었다. 이는 소부대 게릴라 전술이 더욱 유 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김태원 의병부대는 선봉장에 조 경환, 도포장에 최동학, 후군장에 김옥현, 참모장에 유병기를 임명하였다. 이후로 김 태원 김율 형제 의병부대는 독자로, 때로는 연합 작 전으로 막강 일본군 ‘토벌대’와 맞섰다. 무신(1908) 년 설날(양력 2월 2일, 일요일)을 앞두고 김태원 의 1908년 2월(음력) 김태원 의병장이 아우에게 준 친필 시  김태원 의병장이 마지막으로 은신했던 박산마을. 일제 군경에게 집중 사격을 받고 순 국한 곳이다. 멀리 보이는 산이 어등산으로 의병들의 격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