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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⑨ 89 서 와서 잤다. 9일 맑음. 이 날은 바로 고향에서 차례를 지내는 날이다. 새 로 찧은 벼와 향기로운 과일로 집집마다 조상의 은혜 를 기리고 형제들끼리 높은 산에 올라가는 즐거움들 이 역력히 기억난다. 수유를 머리에 꽂을 때 한 사람 이 빠진 것을 한스러워 하는 마음은 의당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으리니, 이 나그네가 품고 있는 향수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위로되어 마음을 삭인다. 어느 때 고향으로 돌아가 이 한을 풀 수가 있을까? 10일 아침에 눈이 오다가 낮에 개임. 형식이 송덕규와 더불어 또 다시탄(多時灘)으로 떠 났다. 고향을 그리는 나그네 회포가 어느 때인들 간절하 지 않으랴마는, 좋은 계절 달 밝은 밤에 한 밤(중)에도 잠은 오지 않는데, 마주하여 마음 터놓을 사람이 아 무도 없다. 더욱 사람으로서 견딜 수 있는 일이 아니 라, 절구 한 수를 지어 울적한 심사를 달랜다. 窮年無復問孤居 한해 저물도록 외로운 거처에 찾는 이 없고 欲返來程夢亦疎 왔던 길 돌아가려 해도 꿈조차 꾸기 어렵구나 心非石也難爲轉 마음은 돌이 아니라 굴리기도 어려운데 身似葦之縱所如 몸은 갈대 같아 흔들리는 대로 가네 鄕懷又値茱萸節 고향 그리는 마음에 또 수유철을 만나니 客意稍寬簡冊書 나그네 심사 책을 읽어 조금이나마 풀어보네 覓句安能題餻 字 시구에다 어찌 고( 餻 )자 운을 쓸 수 있으랴만 只憑衰抱寫疎裾 그저 회포에 약해진 마음 쏟아내 볼 뿐이네 김대락이 중양절에 그리워한 내앞마을의 고향집 ‘백하구려’와 ‘백하구려’ 현판(출처 『한국의 명가 명택』). ‘백하(白下)’라는 호는 남만주의 서간도(압록강 건너편 일대) 백두산 아래에 이주하여 새로운 인생과 새조국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