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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③ 89 라 마주하여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 어, 시 한 수를 읊었다. 이는 아마 객지에서 품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이 경물을 만나면 문득 발동해서인 듯하다. 고인들이 사물을 완상하던 뜻이 진실로 까닭이 있다. 16일 또 종일토록 가랑비가 내림. 구름이 어둡게 끼고 안개가 무성 하다. 거의 사람을 분간할 수 없어 수심과 적적함이 매우 심하다. 이는 북변 풍토의 춥고 써늘함이 음기가 성하고 양기가 약해서일 것이다. 실 아(實兒)가 동제(洞祭)에 불리어 가더니 음복으로 꽂 이산적을 얻어 왔는데, 길이가 한 자 쯤이나 된다. 온 식구가 함께 먹으니 반가운 일이다. 이곳 사람들이 매양 오늘 사진을 돌무더기 위에 걸어놓고, 돼지를 잡아 제사를 차리고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상고시대 상사(上巳) 날 지내던 불제(祓 除)의 여속(餘俗)인지도 모르겠다. 17일 늦게 개다. 이서방 문형(文衡)이 와서 잤다. 18일 맑음. 박낙응과 이문극이 우소(寓所)에서 와보고 갔다. 이종목이 와서 더덕 열 뿌리를 주었다. 고맙다. 20일 맑음. 문극이 와 보고 가다. ○○○에 제사를 행하였다. 초라하고 구차하여 허도(虛度=합당한 법도 없이 그 냥 지나보냄)를 겨우 면했을 뿐이니, 통곡하고 통곡 할 따름이다. 21일 [선고(先考) 도사(都事) 부군(府君)의 기일 이다] 눈바람이 크게 일어나 나무꾼이 산을 오르지 못하 고 길마다 사람 발길이 끊겼다. 윤병렬과 황아무개가 우소에서 와서 잤다. 새벽에 밥을 차려 제사 고유를 하자니 비통한 심정이 하늘과 땅에 사무침을 이기지 못하겠다. 세상이 끝나도록 미칠 수 없는 일이라 하 겠다. 22일 이명세가 더덕 열 뿌리를 보내주었다. 고 맙다. 유하현 삼원보에 있는 조선족 중심학교인 동명소학교. 유하현 삼원보는 서간도 한인  독립운동의 중심지였고, 신흥학교가 있었던 곳이다(조창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