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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024년 11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시론 일제 1905년 을사늑약 강요, 외교권 박탈 1905년(고종 42년) 11월 17일, 이날 일본의 강압 으로 소위 ‘을사보호조약(일명 乙巳勒約)’이 체결돼 우리나라에 일본의 한국통감부(韓國統監府)가 설치 되었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보호라는 구실’ 아래 외 교권을 박탈당하고 독립국가로서의 국제적 지위를 상실하였다.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통감부에 자리 잡 고 앉아서 온 나라의 살림을 감시 · 감독하고 있으니, 국왕이 대궐 안에 있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 였다. 대신들도 통감의 표신(標信)이 없으면 대궐 출 입을 할 수가 없었다. 왜병(倭兵)들이 대궐 문을 지키 고 있었으니, 이를 어쩌랴. 나라가 있으나 나라가 없 고, 국왕이 있으나 국왕이 없는 터였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에 항거, 자결 민영환 순국 소식 전국에 퍼지며 큰 영향 끼쳐 순국시론 순국의 상징, 충정공 민영환 글 권용우(단국대학교 명예교수) 1905년 11월 30일 민영환의 순국소식은 삽시간에 온 백성들에게 전달되었다. 남녀노소가 모두 통곡했다. 잇달아 많 은 우국지사들의 순국이 이어졌다. 전 의정대신 조병세, 전 참판 홍만식, 전 대사헌 송병선, 학부주사 이상철, 평양진위 대 일등병 김봉학 등이 그들이다. 주영공사 이한응도 이역의 땅에서 죽음으로 항일의 뜻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