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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024년 10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경화, 포대(炮隊) 김기순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당대 전라북도의 진안, 임실, 순창, 고 창에서부터 남도의 장성, 남평, 나주, 함평에 이르는 각 고을의 이름난 선비들이었다. 문수사 전투 1907년 10월, 김태원이 부하들 과 문수사(文殊寺)에 머물고 있는 성재 의병진을 찾아갔던 날 밤, 마 침 일본군이 기습공격을 해 왔다.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병들의 치밀 한 기습 공격에 기삼연 의병진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를 본 김태원 은 즉각 인솔해 온 부하들에게 명 령하였다. “의병이 적을 만나 도망하는 것 은 바른 계책이 아니다. 이 캄캄한  밤중에 험한 길을 빠져나가 살기 를 바랄 수도 없다. 기왕 죽을 바에 야 왜적과 싸우다 죽자. 왜적은 대 대로 우리의 철천지원수다. 모두들  한 놈도 남김없이 쏘아라.” 기삼연 의병진에게는 김태원 의 병진 가세가 천군만마의 원군이었 다. 삽시간에 전투는 치열해졌다. 칠흑 같은 야간 전투는 조준사격이 아닌 지향사격으로 의병에게는 유 리한 전투요, 지형이었다. 처음 기 습공격에 동요하던 의병들은 일병들이 하나 둘 쓰러 져가자 기세가 드높아졌다. 한 시간 남짓한 전투에 일본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퇴각하였다. 당시 1908년 설날 아침(양력 2월 2일) 요시다 수비대를 물리친 담양군 남면 무동촌 마을의  돌담(지금도 돌담이 그대로 남아있다.  무동촌에 있는 김태원 의병부대 승전 기념비(전적비)와 김태원 의병장 전적비(광주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