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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024년 9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1911년 9월!  음력 9월 9일, 양의 숫자인 9가 겹친 중양(重陽)절은 우리의 전통 사회에서 의미가 큰 날이었다. 이미 산설고 물설은 망명 지 에서 쓸쓸하게 한가위를 보낸 백하 김대락은 또다른 명절 중양절을 맞았다. 옛 속담에 가난한 집에 제삿날 돌아오듯 한다더 니  명절은 어김없이 그렇게 찾아오고 있었다.  아무튼 고향에 있었다면 ‘새로 찧은 벼와 향기로운 과일’을 마련하여 ‘조상의 은혜를 기리며 형제들끼리 높은 산에 올라가 는  즐거움’에 하루를 보냈을 터였다. 하지만 당시 백하 가족의 경제적 여건은 ‘전대와 항아리를 거꾸로 털’ 정도로 심각했기에 ,  백하는 ‘어느 때 고향으로 돌아가 이 한을 풀 수 있을까’라는 한탄 속에서 고달픈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9월 15일 지은 백하의 한시(漢詩)를 통해 역사에 대하여 생각하다 보니 필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란 과연 무슨 의미를  가 지고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아! 오늘날 우리는 ‘역사는 없고 권력만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거운 마 음 으로 이제 백하의 일기를 읽어 내려간다.  김대락의 백하일기 ⑨ 쓸쓸한 심정에 송나라 역사 ‘동호직필’ 논하기도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화목한 집안에 그나마 위안 9월 9일 초라한 중양절에 한시 읊으며 고향 그리워 해 글  최진홍(월간 『순국』 편집위원) 1일 맑음. 집 아이(아들 김형식)가 송덕규와 함께 귀산(龜山) 으로 떠났다. 저녁에 김달과 사위 황군이 와서 잤다. 듣자니 이동녕이 집에서 기르는 말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해괴하고 두렵다. 3일 비. 안방이 비좁아서 장롱을 바깥방으로 옮겨놓았다. 4일 맑음. 이봉희(매부 이상룡의 아우)가 와서 잤다. 5일 맑음. 가아(家兒, 김형식)가 귀산현(龜山峴)에서 돌아왔다. 7일 맑음. 김달과 조만기와 와서 잤다. 마차를 얻어 땔나무를 옮겨놓았다. 8일 김달은 그대로 머무르고, 김삼이 북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