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page

88 2024년 7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시론 1875년(고종 12년) 9월 군함 운요호(雲揚號)의 불 법침입으로 야기된 조(朝)‧일(日) 양국 간의 군사충 돌이 있었다. 일본은 이 충돌의 책임을 우리 측에 씌 워서 무력으로 개항을 강요하였다. 이 때, 일본은 육 군중장 구로다 기요다카[黑田淸隆]를 특명전권대사 로 삼아 8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1876년 2월 10일 강화도에 도착하여 그 전 해 9월에 발생한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강제로 수교조약을 체결코자 했다. 이에 따라, 2월 11일 우리 조정에서는 어영대장 신 헌 (申櫶)으로 하여금 강화부(江華府)에서 조약체결에 나 서도록 했다.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일본 침략 계기 그 결과, 1876년 2월 27일(음력 2월 3일) 12개 조 항으로 된 ‘조일수호조규(일명 강화도조약)’를 체결 했는데, 이로써 일본이 정치적‧경제적 세력을 우리 일본 강요 정미7조약, 일본인 ‘차관정치’ 개시 사실상 한국통감에 의한 식민지배 시작돼 순국시론 정미칠조약, 대한제국의 조정을 옥죄어오다 글  권용우(단국대학교 명예교수)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해서 서구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개화에 눈을 떠갔다.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우리의 조정에 통상(通商)을 요구하거나 꾸준히 침략의 손길을 뻗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