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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⑪ 87 용문산 전투에서 체포되다 오성술 의병부대는 그 해 여름 까지도 전해산 · 심남일 · 안규홍 의 병부대와 서로 협조하면서 대일 항전을 벌였다. 그러나 함평 대명 동 전투에서 격전을 치른 뒤, 그 규 모가 30여 명으로 줄었다. 이 무렵 일제는 호남의병을 초토화하기 위 해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을 벌이 고 있었다. 사실상 한국병탄을 눈 앞에 둔 최후 경지정리 마무리 작 업이었다. 1909년 10월 2일, 영산포 헌병 대 소속 요시무라(吉村) 중위가 이끄는 일본군 ‘토벌 대’는 용문산에 오성술 부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정 보를 입수하고 추격해 왔다. 오성술 대장을 비롯한 30여 명의 의병들은 결사항전을 다짐했지만, 화력의 열세를 끝내 극복치 못하고 체포되고 말았다. 이로 써 1907년 2월부터 3년간 광주 · 나주 · 담양 · 함평 · 고 창 일대를 무대로 끈질기게 펼친 오성술 의병부대의 항일 투쟁은 막을 내렸다. 오성술 의병장은 1909년 11월 30일 광주지방 재 판소에서 이른바 소위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받았 다. 그러나 복역 중 살인 및 방화죄가 추가되어, 이듬 해 6월 17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 았다. 이에 가족들이 대구공소원(大邱控所院 현, 대 구고등법원)에 항소했으나 기각, 결국 1910년 9월 15일 대구감옥소에서 26세 나이로 순국했다. 정부 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45년 경북 구미 출생으로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30여 년 교사생활과 함께 작가, 시민기자로 지냈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 치악산 밑에서 창작일에 전념하 고 있으며 광복회 고문을 맡고 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 · 『허형식 장군』, 산문집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 『항일유적답사기』 · 『누가 이 나라를 지켰 을 까』 · 『영웅 안중근』 · 『대한민국 대통령』 등이 있다. 이밖에도 사진집 『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 · 『개화기와 대한 제국』 · 『일제강점기』 · 『미군정 3년사』 ·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등과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 『평화와 인권의 대통령, 김대중』 등이 있다. 필자 박 도 오성술 의병장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