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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④ 87 리고는 발길을 법화마을로 향했다. 다시 광주로 가는 18번 국도를 따라 북상하자 곧 문덕면사무소가 나오고, 거기서 우측 주암댐을 끼고 달리자 동산리 법화마을이 나왔다. 안규홍 의병장이 자라고 20여 년 간 담살이하던 마을이었다. 그곳 주 민에게 안 의병장 집터를 묻자 개천 복개한 끝 10여 평 공지가 바로 안 의병장 어머니가 오래도록 살았 던 토담집이었는데, 지금은 뜯겨 버렸다고 했다. 우 리 일행은 그가 가르쳐준 곳으로 가서 공터만 보고 는 허망하게 차머리를 돌렸다. 안규홍 의병장의 행장 안규홍(安圭洪) 의병장은 머슴이었다. 그는 1879 년 4월 10일, 전남 보성군 보성읍 우산리 택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 정씨 는 먹고살기 위해 어린 남매를 데리고 이웃 문덕면 법화마을에 사는 고종 박제현의 집으로 옮겨갔다. 안규홍은 어려서부터 담살이를 하며 어머니를 지 극 히 봉양하는 효자로, 타고난 성품이 강직하고 담력 이 뛰어났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돼 국권을 잃게 되자 안규 홍은 깊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탄식하자 곁에서 함께 자던 이가 그를 위로하며 세상 되는 대로 살자 고 했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뿌리며“차라리 나라를 위하고 임금을 위하여 죽을지언정 오랑캐(왜놈)가 되 어 살지 않겠다”한 뒤, 그는 담살이 생활을 청산하고 의병 전선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 길로 의병 에 투신한 안규홍은 전해산(全海山) · 심남일(沈南一) 과 더불어 호남 제일의 의병장이 되었다. 일본군은 안규홍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 겼다. 거괴(巨魁,‘우두머리’) 안규홍, 보성군 봉덕면(현, 문덕면) 법화촌 31세. 융희 2년 4월 순천 부근을 일제의 ‘남한폭도대토벌작전’으로 체포된 호남 의병장들의 대구감옥에 갇혀 있던 모습(앞줄 왼쪽부터 송병운, 오성술, 이강산, 모천년, 강무경, 이영준, 뒷 줄 왼쪽부터 황두일, 김원국, 양진여, 심남일, 조규문, 안규홍, 김병철, 강사 문, 박사화, 나성화 의병장.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안규홍 후손 안병진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