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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③ 87 이 되었다”고 한다. 만초가 당한 전후의 곤액(困厄)이 사람으로 하여금 지극히 대신 탄식하게 한다. 5일 낮에도 어둡고 음냉하더니, 빗방울이 싸 락눈이 되어 저녁 내내 개지 않았다. 낙응(洛應) 박형 (朴兄=박경종 朴慶鍾)이 들어 왔다고 한다. 반드시 들 을 만한 소식이 있을 것이나, 만초의 우소에 가서 의 탁했다고 하니 그립고 울적한 마음이 더욱 심하다. 6일 날씨가 온화하여 지팡이를 짚고 계산(溪 山)을 산보하였다. 오후에 영해의 박낙응과 덕민(德 敏) 두 사람이 와서 고국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근심 스럽고 적적하던 마음에 자못 위안이 되었으나, 다만 고향 소식을 상세히 들을 수 없어서 답답하고 우울하 다. 형국(亨國)과 이형(李兄)이 우소에서 찾아오고, 가 상(街上)의 이진사 또한 지나가다 들렸다. 만초의 조 카도 같이 왔는데, 산후 우환이 아직 진정되지 못하 였다니 걱정스러운 일이다. 8일 맑음. 사위 이문형(李文衡, 이광민)이 그의 처를 데리고 가자 손녀도 따라나서 함께 갔다. 오후 3시에 손자 창로가 쌀을 사 보냈다. 이곳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그 아이의 어른을 우대하는 뜻을 보니 기특한 일이다. 그러나 자산(貲産)이 저 한 몸에 달려 있음을 헤아리지 않고, 이 병들어 쓸모없는 나 를 돌아보아 무슨 힘이 난다고 도리어 이렇게 분수에 넘치는 음식을 보내는가? 겉으로는 비록 꾸짖어 물 리쳤으나, 입에는 먼저 침이 흐른다. 그 죄상을 따져 보면, 위는 문을 여는 내응(內應)이고, 입은 사물을 끌 어 당기는 낫과 창[鉤戟]이라, 그들이 우호를 내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마땅하다. 사동(砂洞)의 사부인께서 매양 새로운 음식을 장만 해 주시는데, 법도 있는 집안의 규방 범절은 여사(女 史=열녀전)에 편보(編補)되어야 마땅하다. 감사하고 고맙다. 집의 아이가 이미 돌아와 얼굴을 비출때가 되었건만, 한 번 간 이후로 막막하여 소식을 듣지 못 1907년에 간행된 김흥락의 문집 『서산집(西山集)』의 목록 부분(출 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김대락의 사위(이상룡 조카) 이문형 (이광민)(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