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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열일기 • 석주 이상룡의 서사록 ⑦ 87 토지란 곡식이 생산되는 곳이다. 곡식이 있은 뒤에 나라의 재용이 갖추어지고, 토지가 잘 분변된 뒤에 백성의 식생(食生)이 풍족해진다. 옛날의 군자가 이 것을 알았으므로 “어진 정치는 반드시 경계를 다스 리는 일에서 비롯한다[仁政必自經界始 『맹자』 ]”고 한 것이다. 경계를 다스리는 일이 바르면 백성과 산업이 일정해지고 부세(負稅)와 요역(徭役)이 고르게 되며, 가호와 인구가 분명해지고 군대의 오열이 정비된다. 송사(訟事)가 그치고 형벌이 줄어들며 뇌물이 없어지 고 풍속이 후덕해진다. 경계를 다스리는 일이 바르지 못하면 권문과 부호 가 겸병하고 빈부가 고르지 않게 되며 부세와 요역이 절도가 없어지니 양민이 살 곳을 잃어 가호와 인구가 빠져나간다. 송사가 번다해지고 귀천이 구별이 없어 져 분수가 밝아지지 않는다. 뇌물이 몰래 행해져 정 형(政刑)이 통하지 않으니 인심이 부박해지고 풍속이 무너진다. 정치에 뜻을 둔 자가 경계를 바르게 하는 일을 우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각컨대, 우리 왕조의 역대 결부(結負=토지 의 결 수와 수확에 따라 조세를 부과하는 것) 제도는 전지 의 등급을 6등급으로 나누고 작황을 9등급으로 나누 었으니[田分六等 年分九等] 그 규모와 절목이 상세하 고 엄밀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지금에 이르 러 온갖 폐단을 함께 일으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제도를 제정할 때 오로지 조세의 등급에 주목 하였으나, 토지의 면적이 들쭉날쭉하여 고르지 않은 데 근원한다. 이에 간사한 서리배들이 그 고르지 못 한 면적을 빌미로 농간을 부리고 이리저리 고쳐 누락 시키거나 속여 숨기는 폐단이 생기니, 드디어 법제가 허물어지게 된 것이다. 만약 그러한 폐단을 막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그 토지의 면적을 먼저 고르게 하여 들쭉날쭉함이 없도 록 한 뒤에 수세의 등급을 매긴다면 서리배들이 간사 한 꾀를 부릴 여지가 없어져 거의 오래 행하더라도 폐단이 없을 것이다. 12일 박덕민(朴德民)이 고국으로 출발하는 편 에 집으로 가는 편지를 써서 부치다. 오후에 한전법(限田法)과 직관법(職官法)을 논하였 김대락과 안동인들의 1910년대 초 이주 경로 (매일신문 제공) 김대락의 『백하일기』(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