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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약산 김원봉과 밀양, 의열단의 자취를 따라 87 의 것으로 잘못 정리한 탓이라고 했다. 1920년 12월 27일에 있었던 밀양경찰서 폭탄투척 의거는 폭탄 16개를 준비한 의열단의 제1차 의거가 일경에 사전 발각되어 다수가 체포된 상황에서 석 달 전(9월 14일) 박재혁 의사가 벌인 부산경찰서 폭탄투 척 의거와 함께 방심한 일제의 허를 찌른 거사였다. 박재혁 의사는 의열단 제1차 의거로 나중에 체포되 는 김기득(1899~1933)과 사전에 접촉한 후, 상하이 로 가서 김원봉을 만나고 의열단에 가입하고 돌아와 의거를 단행했고, 최수봉 의사는 제1차 의거에서 체 포를 면한 동화학교 동창생 김상윤의 권유와 고인덕, 이종암 등의 뒷받침 속에 의거를 수행했다. 두 사람 의 연이은 의거는 민심을 격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제 1차 의거의 실패로 의기소침해 있던 의열단원을 고 무하였고, 이듬해 김익상 의사의 조선총독부 폭탄투 척 의거로 이어졌다. 지난 2019년 3 · 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숭실 대에서는 ‘독립의 반석’을 설치하였다. 독립의 반석 은 숭실 출신 독립운동가 88인을 기리는 조형 물인 데, 그 88인에는 최수봉 의사도 포함되어 있다. 최 수봉 의사의 이력이나 사진에 대한 잘못된 정리가 연쇄 반응을 일으켜 멀리 숭실대에도 이렇듯 영향 을 미치고 있으니 보훈처의 역할이 막중함을 알 수 있다. 최수봉(최경학) 사형집행 보도기사(『동아일보』1921.7.12) 최수봉 사진에 대해 설명하는 이준설 학예사 서울 동작구에서 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맡아 지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서 울현충원 역사탐방을 비롯하여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근현대 역사탐방을 이끌고 있고, 「오마이뉴스」에 ‘동작 민주올레’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현충원 역사산책』, 『동작구 근현대 역사산책』, 『낭만과 전설의 동 작구』, 『동작 민주올레』 등이 있다. 필자 김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