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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諱鍾樂姓權雲耕其號也貫安東權自高麗太師壁上亞父功諱幸后有諱守平 光祿大夫樞密院副使有諱溥號菊齋諡文正公永嘉府君世稱九封君之後也自 先世落鄕抵保寧而生公於珠山面金巖里公生而有異性勵勇而早時失怙僅僅 保命稍長以需世之志廣求同志風爨露宿不事家業每懷不遇以慷慨之志涵養精 神而値庚戌七月日聞韓日合邦之報憤然而狂碎以赤手空拳入山修道名以一 日敎巧設爲敎主致員七三百餘同志統合同敎徒密理以抗日退及鼓吹精神硏磨 方退日之策及當己未以一運勳分付敎徒龜鑑迯隱身於聖住山中益谷進絡應 手持國旗豪氣先唱大韓獨立萬歲爲萬民連鐵而時則辛未四月日大田刑務所敎徒 輩固而自誓退日結心修道之際爲倭警所監捕公曰諸人皆無罪責在首領我 金昌固李文天金成千朴敎奎諸氏同爲囚監中公曰諸人皆無罪責在首領我 責諸人皆釋放我自擔之矣累次說得而皆放公獨拷問其殘惡囚監而二年三月 爲獄中孤魂五十一年紀別世噫雲耕權公之貞忠烈節以終始不屈於惟權公萬: 銘之曰 歲先唱道義心肝忠滿骨髓古人此言公實無愧公魄未甦公名則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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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휘는 종락(鍾樂)이고 성은 권씨(權)이며 운경(雲耕)은 그 호이다. 본관은 안동 권씨로 고려 태사 벽상아부공 권행의 후예이며 휘 수평, 휘 광록대부 추밀원부사 휘 부(호 국재, 시호 문정공) 등 영가부군이라 세상에서 일컫는 구봉군의 후손이다. 선대부터 향리에 정착하여 보령에 거주하게 되었는데 공은 주산면 금암리에서 태어났다. 공은 태어나면서부터 성품이 남다르고 용맹하였으며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간신히 목숨을 보전하며 자라났다. 세상을 구제할 뜻을 품고 널리 동지를 구하러 풍찬노숙하며 가업을 돌보지 않았으며, 항상 뜻을 만나지 못함을 개탄하며 강개한 뜻으로 정신을 함양하였다. 경술년(1910년) 7월 한일합방의 소식을 듣고 분연히 일어나 맨손과 주먹으로 산에 들어가 도를 닦으며 '일일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교주가 되어 700여 명의 동지를 모았다. 교도들을 통합하고 은밀히 항일의 기틀을 다지며 정신을 연마하여 일본을 물리칠 책략을 세웠다. 기미년(1919년)을 당하여 독립운동의 훈령을 교도들에게 나누어 주고 성주산 중에 몸을 숨겼다가 국기를 들고 기개 있게 앞장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수많은 민중이 연이어 호응하였으나 신미년(1931년) 4월 대전형무소에 갇히게 되었다. 일본 경찰에 붙잡혔을 때 공은 "모든 죄는 주모자인 나에게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죄가 없다"고 당당히 말하며 김창고, 이문천, 김성천, 박교규 등의 동지들을 누차 설득하여 석방시키고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짊어졌다. 잔혹한 고문과 옥고를 치르면서도 끝내 굴복하지 않으시다가 2년 3월 만에 옥중의 고혼이 되시니 향년 51세였다. 아! 운경 권공의 곧은 충성과 뜨거운 절개는 처음부터 끝까지 굴하지 않았으니 오직 권공을 만대에 기리며 명하기를 "선구적으로 도의를 외치니 심장과 간에는 충성심이 가득하고 골수까지 사무쳤도다. 옛사람의 이 말이 공에게 실로 부끄러움이 없으니, 공의 혼백은 비록 깨어나지 못하나 그 이름은 영원히 남으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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