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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2024년 10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김태원·김율 형제 의병장 행장 김태원·김율 형제 의병장은 나주 사람으로 본관 이 경주다. 형 김태원의 본명은 준(準)이요, 자는 태 원(泰元)이며, 호는 죽봉(竹峰)이다. 아우 김율의 호 는 청봉(靑峰)이다. 이들 형제는 전남 나주군 문평 면 북동리 갈마지에서 형 태원은 1870년, 아우 율은 1881년에 태어났다. 형 태원은 벼슬이 참봉에 이르 러 사람들이 ‘김참봉’이라 불렀다. 그는 얼굴이 빼어 났으며 글과 글씨를 잘 썼다. 아우 율(聿)은 성균관 박사처럼 박학다식하다고 하여 ‘박사 ’라 는 별칭을 얻었다. 1905년 11월 이완용 등 을사5적(乙巳 5賊)들이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다 음, 이들이 일본의 힘을 빌려 나라를 그 르치고 있다는 사정을 듣자, 김태원은 갈마지 집에서 문을 닫고 분한 마음을 삭이며 지내다가 하루는 마을 뒷산 국사 봉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고, 토 적(討賊)의 길에 나설 것을 다짐하였다. 산에서 내려온 태원은 그날 밤 아우를 찾았다. 두 사람은 불을 밝히지도 않고 마주 앉아 시 국을 얘기하였다. “너도 이미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만, 나라 형편이  이제는 이대로 볼 수가 없구나.” “형님, 저도 글을 읽은 사람입니다. 무엇이 바르고  그른 줄을 압니다.” 의로운 형이요, 아우였다. 그 자리에서 형제는 이 땅에 몰려와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왜적을 토벌하기 로 맹세하였다.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심한 김태원은 집안어른 김돈(金燉)을 찾아갔다. “제가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이 땅에서 몰아내려 고 합니다. 어르신의 조언을 들려주십시오.”  “내가 자네 같은 의로운 선비에게 무슨 할 말이 있 겠는가. 내 듣자하니 장성에서 성재(省齋)가 의병을  규합한다 하고, 창평에서 녹천(鹿川)이 군사를 모집 하여 의로운 기세를 널리 떨치고 있다고 하네.” 나주 시민공원에 있는 '죽봉 김태원 장군 기적비(紀蹟碑)'(가운데).  왼쪽에 있는 ‘죽봉선생 친필 시비. 김태원이 아우 김율에게 주는  친필 시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