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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일대 6일간의 독립전쟁┃83 ▶ 천보산(天寶山) 전투 천보산 전투는 북로군정서의 1개 중대와 홍범도 부대의 일부가 10월 24일 저녁 8시와 9시경 두 차례, 25일 새벽 한 차례에 걸쳐 천보산의 서남쪽 부근에서 광산을 지키고 있던 1개 중대 병력의 일본군을 공격 하여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북로군정서 이범석이 이끄는 부대는 10월 24일 8 시와 9시 두 차례에 걸쳐 천보산 부근의 일본군 1개 중 대를 공격하였다. 이때 일본군은 국자가에 주둔하고 있던 보병 1개 중대와 기관총 소대의 증파를 요청할 정도로 격렬한 전투가 전개되었다. 홍범도부대에 소속되어 있던 독립군 부대도 10월 25일 새벽 식량조달을 위해 천보산 부근에 나갔다가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습격하여 막대한 피 해를 주었다. 독립군으로부터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공격을 받고 패퇴한 일본군은 국자가(현재 연길시 내)에 있는 보병 1개 중대와 기관총 1개 소대의 병력을 보충하였다. 천보산 전투 매바위 전경 천보산 전투 유적지(길림성 화룡시) 청산리 일대에서 대승을 거두다. ▶ 고동하(古洞河) 전투 고동하 전투는 청산리독립전쟁 가운데 마지막으로 치러진 전투였다. 10월 25일 밤부터 26일 새벽 사 이에 일본군이 홍범도부대를 야간습격하였다가 오히려 반격을 당한 전투였다. 고동하전투에는 홍범도 연합부대와 국민회군 등 약 400명의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 아즈마 지대장의 150명의 일본군과 전투에 서 2개 소대 100여 명을 섬멸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홍범도 부대를 찾아 산림 속 을 헤매던 일본군은 10월 25일 밤 10시경에 고동하 골짜기에 서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 군 부대를 발견하고 반야(飯野) 소좌가 이끄는 150명의 병력을 앞세워 기습적인 돌격전을 감행 하였다. 그러나 용맹하게 반격 을 가하는 독립군 연합부대와 약 45분간 치른 전투에서 일본군은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화룡현 방 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이 전투에 대해 일본군 보고서에서도 ‘동쪽 하늘이 점차 밝아오자 일본군 장졸의 얼굴마다 기쁨이 나타났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 아즈마 지대장의 직접 지 휘 를 받던 장교 반야 소좌는 일본군이 처음 출정했을 때는 1개 대대를 지휘하는 대대장이었는데, 이들 이 고작 150명 정도의 부대원만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하고 있었다는 것은 청산리독립전쟁에서 일본군 이 받았던 피해가 상당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고동하 전투 유적지(길림성 화룡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