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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2024년 2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출발하였다. 이들이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 당도 한 때는 추석을 나흘 앞둔 1907년 8월 11일(음) 오 후였다. 의를 위하여 목숨을 던지다 지리산 연곡(燕谷)은 남으로 화개, 북으로 문수골 을 끼고 있는 골짜기다. 예로부터 화개는 호남에서 영남을 오가는 관문으로, 마을에는 경상도와 전라도 에서 찾아든 지리산 포수가 많이 살고 있기에 고광 순은 일군과 전투할 때, 그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더욱이 문수골은 험한 천연 요새 이니, 이 두 곳의 지리를 이용하여 유격전술을 쓴다 면 대일항전에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고광순 은 그렇게 판단하고 의병진을 유격전에 편리하도록 소단위로 재편성하여 날마다 훈련에 열중하였다. 그 런 가운데 고광순 의병진은 여러 차례 적과 교전하 여 상당한 전과를 올렸 다. 하지만 적은 9월 11일 새 벽 6시 무렵 의병진이 머 물고 있는 연곡사 일대를 여러 겹으로 완전히 포위 했다. 희끄무레한 새벽녘 초 병이 몸을 숨기고 언저리 를 살펴보니 연곡사는 이 미 적의 병력으로 완전히 포위되었다. 초병의 숨 가 쁜 보고를 들은 고광순은 마침내 최후 결전을 준비 하였다. 고광순은 부하들 에게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 이 병력으로는 적과 싸워 전혀 승산이 없다. 나는 이미 나라를 위하여 한 몸 바치기로 한 사람이 니 적탄에 맞아 죽을 것이다. 너희들은 군사들을 데 리고 이곳을 빠져나가 뒷날을 도모하라. 특히 네가 맡은 각종 군부(軍簿, 군의 장부)들이 절대로 적의 수 중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군령 이다.” 고광순은 그 말을 마치자마자 총을 들고 방을 뛰 쳐나가 적진을 향해 소리쳤다. “이놈들! 너희들은 내 집안과 나라의 원수다. 내 죽 어 귀신이 되어서라도 반드시 너희들의 씨를 말리고 말 것이다.” 고광순은 적을 연곡사 경내 계곡으로 유인하여 동 백나무 그루터기에 기대어 총알이 다할 때까지 쏘고 또 쏘았다. 고광순 부하들은 대장의 뒤를 따랐다. 적 녹천 고광순 영정(녹천기념사업회 제공) 전투 현장에 달려와 전사한 고광순 의병장 시 신을 수습하고 추모시를 헌정한 매천 황현 (1855~1910)(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