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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2023년 12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쓰고 난 통발이나 올무처럼 여겨 잊어버리도록 버려두었으니, 어찌 천년 문화의 역사가 이토록 비열하기에 이르렀는가? 대개 만주 온 땅은 부여 이래 우리나라의 근본이요, 핵심이 되는 곳이다. 우리 역사가들은 다만 신라만을 알고 발해를 알 지 못하여 마침내 3천 년 조국의 후신을 먼 이역 의 오랑캐의 반열에 떠밀어 넣고 끝내 국내의 역 사기록에 단 한 글자도 전해지지 못하도록 하였 으니, 이것이 어찌 공평한 의리를 주장한 신필 (信筆)이라 하겠는가? 석주의 언어관 또한 일기 속에는 독특하고 뛰어난 석주의 ‘언어관’ 이 숨어 있었다. 석주는 국어는 ‘국민의 마음의 소리’ 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비록 종족이 다른 사람이라도 국어를 함께 사용하면 자신도 모르 는 사이에 문득 정신이 바뀌고 혼연히 하나의 국민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가 언어를 이렇게 중시한 이유는 바로 당시 조국 의 ‘모든 학교가 어학을 주요 과정으로 하’면서 ‘공문 과 사사로운 편지까지도 모두 국문의 사용을 금하고 순전히 일본글을 쓰도록 하고 있’으므로 ‘고향으로 다 시 돌아가는 날 장차 한 사람의 한인도 볼 수 없을 것’ 이 염려 되었기 때문이었다. 석주는 “대저 언어는 마음의 소리가 발하여 나오 는 것이니, 마음의 소리가 일치하지 않으면 단결력이 결핍될 것임은 묻지 않아도 알 일이”라고 말한다. 석 주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국민의 단결’이었고, 이 단 결에 중요한 요소는 ‘언어’라는 점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석주의 국가관 우리가 석주의 일기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주목해 야 할 점은 손위 처남 김대락(金大洛)과의 정치에 대 한 수준 높은 논의들이다. 이들은 ‘토지제도’를 논의 하였고, ‘호적제도’를 논의하였으며, 요즘 용어로 ‘복 지’와 관련된 사안들에 대하여 깊은 논의를 하고 있 었다. 구체적으로 석주가 제기한 문제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곡식이 있은 뒤에 나라의 재용(財用)이 갖추어지 고, 토지가 잘 분변된 뒤에 백성의 식생이 풍족 해진다. … 지금에 이르러 온갖 폐단을 일으키는 까닭은, 그 제도를 제정할 때 … 토지의 면적이 들쭉날쭉하여 고르지 않은 데 근원한다. 이에 간 사한 서리배들이 그 고르지 못한 면적을 빌미로 농간을 부리고 이리저리 고쳐 누락시키거나 속 여 숨기는 폐단이 생기니, 드디어 법제가 허물어 지게 된 것이다. 『경국대전』에도 경외(京外)에 모두 상평창(常平 倉)을 설치하게 하였으나, 필경에는 경성 이외에 는 한 개의 고을에서도 시행한 곳이 없었다. 아! 나라가 수척하고 백성이 가난하게 된 데에 어찌 까닭이 없겠는가? 국가가 할 일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가 아니 던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잘 보호되기 위해서는 세금과 재판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되어야만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