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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86 2023년 3월 는 1920년의 제1차 폭탄의거에서 곽재기, 이성우 등 과 함께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애석하 게도 사건이 사전에 발각되어 동지들과 함께 일제에 체포되어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았지만, 1926년에 출 옥한 이후 1927년부터는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에 참여하여 1929년에는 신간회본부의 서기장을 맡아 집행위원장인 허헌과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 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31년에 병으로 운 명하면서 밀양에 안장되었다. 1931년 당시 밀양의 사회단체로 구성된 밀양사 회장위원회는 원래 묘비에 ‘朝鮮運動先驅者白民黃先 生尙圭之墓(조선운동선구자 백민 황선생 상규지묘’ 라는 문구를 새기려 했다. 그러나 일제는 사전검열 을 통해 ‘조선운동선구자’라는 글자를 빼라고 강요 했고, 뒷면에 새길 황상규의 약력에 대해서도 칼질 을 해댔다. 결국 밀양사회 장위 원회에서는 1만여 명이 모인 장례식에서 일제의 간섭에 대 한 경과보고를 한 후, 일제가 칼질한 약력을 아예 묘비 뒷면 에 새기지 않는 것은 물론 약 력 보고조차 생략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황상규 선생의 묘비 에는 장례식조차 검열하고 탄 압하던 일제강점기의 시대상 황이 담겨 있는 셈이다. 이제 라도 1931년 장례식 당시 세 우고자 했던 뜻 그대로 앞면에 는 ‘朝鮮運動先驅者白民黃先生 尙圭之墓(조선운동 선구자 백 민 황선생 상규지묘’라고 새기고 뒷면에는 황상규 선생의 약력을 담은 묘비를 새로 세우면 어떨까 하 는 생각이 들었다. 최수봉 의사의 이력과 사진이 사실과 다르다고? 이번 밀양 역사기행에서 받은 충격 중 하나는 밀 양독립운동기념관과 옛 밀양경찰서 터를 찾았을 때 밀양경찰서 폭탄투척 의거의 주인공 최수봉 의사 (1894~1921)의 이력과 사진이 실제와 다르다는 사 실을 새로 안 일이다. 해설을 맡아 주신 이준설 학예 사에 따르면 보훈처 공훈록에 등재되어 있던 사진 (현재는 내려졌다)과 ‘숭실중 3년 중퇴’ 이력은 최수 봉 의사의 호적명인 최경학(崔敬鶴)과 같은 이름을 가진 경북 경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경학(崔敬學, 1890~1976)의 사진과 이력을 보훈처가 최수봉 의사 ❼ 황상규 흉상  ❽  황상규 묘비. ‘백민 황선생 상규지묘’라고 새겨져 있다. ❼ 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