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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린은 충남 아산(牙山) 사람이다. 1922년경 중국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로부터 군자금 모집을 위해 입국한 사촌처남 최익수(崔益秀)의 임무를 돕기 위하여 자신이 근무하던 아산금융조합의 공금을 빼내어 최익수·이종락(李鍾洛)과 함께 중국 상해로 도항(渡航),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헌납한 후 동 임시정부의 재산계 서기로 임명되어 광동(廣東)·무창(武昌) 등지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1927년 11월 조선독립과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상해 한인독립청년회(上海韓人獨立靑年會) 등을 중심으로 북경(北京), 광동(廣東), 무창(武昌) 등 중국 각지의 한인독립청년회 대표가 모여 각 청년회를 통합, 비밀결사 재중국본부 한인청년동맹(韓人靑年同盟)을 창립할 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8년 12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재산계 서기로 활동하던 중, 동 임시정부에서 부여한 모종의 임무를 띠고 귀국하여 본적지인 충남 아산군(牙山郡) 신창면(新昌面)에서 군자금 등을 모집하다가 아산경찰서 일경에게 붙잡혔다. 1929년 7월 2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1930년 8월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중 병을 얻어 위독하자 가출옥되었으나 동년 9월 10일 사망(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