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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시론 • 근대교육의 첫 걸음 85 각지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통한 민족의식을 심어주 고, 항일의 선두에 투쟁할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었 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학교를 세운 것이 평안북 도 정주의 오산학교(남강 이승훈)와 평안남도 평양 의 대성학교(안창호)이다. 남강 이승훈의 헌신 남강은 가난한 선비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일찍 이 부모님을 여의고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내면서 납청정(納淸亭)의 어느 유기상(鍮器商)의 점원으로 일하면서 세상에 눈떠갔다. 그러던 어느 날 도산 안 창호의 연설을 들었는데,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강조 하는 대목에 감동을 받고 그 날로부터 머리를 깎고 술과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고향에 강명의숙(講明 義塾)을 세우고, 청소년들의 교육에 뛰어들었다. 이 에 터잡아 오산학교의 개교로 이어졌는데, 이 때가 1907년 12월이었다. 1910년(순종 4년), 남강은 기독 교에 입교하였는데, 기독교를 오산학교의 교육정신 으로 삼았다. 개교 100주년 기념비에 새긴 글귀 「밝 고 덕스러운 겨레얼의 배움터」가 남강의 정신이다. 또, 이 무렵 도산 안창호가 평양에 세운 대성학교 는 중등교육기 관 이었는데, 내면적 으로는 소정의 학 과(學課) 이외에 인 격의 함양과 민족 정신의 고취를 교 육방침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도 산은 전국 각도의 각군에 초등학교를 설립하여 대성학교에서 배출한 졸업생을 교사로 삼아 지도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 었다. 이렇게 보면, 대성학교는 도산이 꿈꾸었던 교 육구국을 위한 제1교요, 표본교였다고 할 수 있었다. 이 밖에 보광학교(이준) · 오성학교(서북학회) · 삼흥 학교(안중근) · 장훈학교(長薰學校, 이회영) · 동원여자 의숙(同媛女子義塾, 조동식) · 한영서원(韓英書院, 윤치 호) · 협동학교(協東學校, 이상룡 · 류인식 · 김동삼) · 성명 학교(星明學校, 김창숙) · 협성학교(協成學校, 서상돈) 등도 신민회의 교육구국운동에 바탕을 둔 근대교육 의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3 · 1운동 직후 서대문형무소에 수 감된 이승훈(1864~1930) 1908년 경 대성학교 교사와 졸업생들(국가보훈부 제공)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 Herzen 교육대학교에서 명예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처장 ٠ 법과대학장 ٠ 산업 노사대학원장 ٠ 행정법무대학원장 ٠ 부총장 ٠ 총장 직무대행 등의 보직을 수행하였 다. 전공분야는 민법이며, 그중에서 특히 불법행위법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 구활동을 하였다. 정년 이후에는 정심서실(正心書室)을 열고, 정심법학 포럼 대 표를 맡아서 회원들과 법학관련 학술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필자 권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