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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약산 김원봉과 밀양, 의열단의 자취를 따라 85 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서울로 확산될 때 근우회 간 부로서 여학교를 조직하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 고,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의열단에 가입한 인물 이었다. 이때 김원봉과 결혼한 박차정은 1939년 2월 장쑤성(江蘇省) 쿤룬산(崑崙山)에서 일본군과 교전하 다 당한 부상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중 1944년 5월 사망하였다. 무덤은 해방과 함께 유해를 봉환하여 돌 아온 김원봉이 밀양의 공동묘지에 안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행 중에 1995년에 이미 독립유공자 로 인정되었음에도 묘지 관리가 어찌 이리도 부실한 가, 하는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으니 실로 안타까 운 마음이었다. ‘조선운동 선구자’ 백민 황상규의 묘 백민 황상규의 묘는 첫날 밀양에 도착하여 점심 식 사를 마친 후 찾은 첫 탐방지였다. 묘비 앞면에는 ‘白 民黃先生尙圭之墓(백민황선생상규지묘)’라고 새겨져 있었다. 황상규는 김원봉보다 여덟 살 위로 밀양 지역 독립 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김원봉의 친척이기도 한 황상규는 김원봉이 의열단을 창단하고 그 단장 역 할을 하는 데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 는 의열단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고문 역할 을 맡았다. 황상규는 의열단의 창단과 함께 조선총독 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일보사 등을 폭파하려 ❹  밀양 동화학교 터. 지금은 택시회사 건물로 변했다. ❺  밀양 3 · 13만세운동 기념비 ❻  박차정 지사의 묘 ❹ ❺ 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