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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시론 • 한일의정서, 한국을 병참기지로 만들다 85 있다거나’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로써, 한 국의 영토가 러일전쟁을 위한 병참기지로 변하였다. 이제 일본은 모든 군사적 행동에 있어서 거칠 것이 없었다. 또 경의선과 경부선이 군용으로 부설되고, 해안과 하천의 통항권이 모두 일본에 넘어갔다. 이어서 일 본 육군이 인천항을 거쳐 육로로 북진하면서 한국 사 람들을 군수품 운반에 강제 동원하였다. 이 때, 평양 은 일본 군인들의 진군을 위한 주요 병참기지였던 관 계로 그 피해가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 본 군인들이 진군하면서 약탈과 폭력을 자행함으로 써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드는 현상을 가져왔다 고 한다. 교회는 미국 선교사들이 있어서, 이 곳에 있 으면 일본 군인들의 약탈과 폭력을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는 신자들에게 쌀을 제공함으로써 삶의 터전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 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리고, 5월이 되면서 일본군 선발대가 압록강 을 건너 여순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해군을 격파 하였다. 전세가 일본으로 기울게 되자 우리 조 정은 한 · 러 사이의 일체의 조약과 협정을 일방적으로 폐 기하였다. 1904년 8월 22일, 일본은 제1차 한일협 약을 체결하고, 우리 조정을 옥죄어왔다. 그리고, 다 음 단계로 가기 위한 사전작업을 추진하더니, 1905 년 11월 17일에 제2차 한일협약(이른바 을사보호 조약)을 체결하고 한국에 통감부를 설치하였다. 이 로써, 우리나라는 독립국가로서의 국제적 지위를 잃고 말았다. 돈에 매수되어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 중에 한명이기도 한 이지용(좌) 과 하야시 곤스케(우) 한일협약 조약문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 Herzen 교육대학교에서 명예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학생처장 ٠ 법과대학장 ٠ 산업 노사대학원장 ٠ 행정법무대학원장 ٠ 부총장 ٠ 총장 직무대행 등의 보직을 수행하였 다. 전공분야는 민법이며, 그중에서 특히 불법행위법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 구활동을 하였다. 정년 이후에는 정심서실(正心書室)을 열고, 정심법학 포럼 대 표를 맡아서 회원들과 법학관련 학술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필자 권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