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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셨다. 이 격문에 이르기를 「하는에는 해가 둘이 없고 백성에게는 임금이 둘이 없다. 효도는 마땅히 성력을 다해야 하고 충절은 생명을 바쳐야 한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데 하물며 남의 나라 임금을 어찌 섬기랴 어버이를 위한 정치를 하는것이 아닌즉 나라 잃은 백성이야 어찌 통탄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너희 왜인은 우리의 적이며 원수인 것이매 이제야 너희들은 일시에 진멸코자 하노라」고 하셨다. 이와같은 항이루쟁을 계속하던 중 1919년 기미 1월 22일 태상왕 고종께서 비명에 승하하시자 더욱 통분하여 침식을 전폐하시면서 1919년 2월 고종의 假殯(가빈)을 設廟(설묘)하여 민중들을 모아 조석으로 망배통곡하시며 항일독립쟁취를 고취시켰다. 이를 무마하고 만류하려고 달려온 관원에게 「너는 동족으로써 도리어 왜인의 노예노릇을 하니 개와 말보다 못한 놈이구나」라고 힐책하여 쫒아보냈으며 드디어 잔인무도한 일경에게 피체 투옥되었으나 의연히 항변하며 굴하지 아니하셨다. 이로 인하여 선생은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징역1년의 선고를 받고 왜인의 재판을 다시는 받지않겠다고 하여 대중들이 원청하는 상고를 거절하고 대구형무소에 수옥되는 몸이 되었다. 그러나 선생은 옥중투쟁을 계속하여 형리들의 심한 고문과 탄압으로 사경에 이르게되자 이에 당황한 일제에 의하여 1920년 4월 22일 옥고 11개월 19일만에 빈사상태로 석방되어 귀가 3일만인 4월 24일 조국광복을 염원하시면서 향년 63세로 순국하시었다. 부음을 들은 원근의 뜻있는 많은 선비와 동지들의 회장으로 이들의 애도속에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동 대양산 남록에 유좌로 예장하여 모시었다. 이후 25년이 지난 1945년8월 15일 조국이 광복되었으니 선생의 혼령이시여 지하에서 기뻐하셨으리 그해 경북의 각처 유지및 동지 백여명의 발기로 선생의 순국하신 업적으로 기리기 위하여 수계를 하고 1982년 8월 15일 전두환대통령께서 조국의 자주독립운동에 헌신하시다 순국하시어 건국에 공헌한 공적을 표창하시고 훈장을 추서하시니 선생의 순국하신지 63년이 되는 해이시다. 이제 의로운 선생의 뜻을 높이 받들고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이곳에 돌을 세워 그 자취를 새기고 삼가 헌시하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