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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2023년 10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오늘 우리는 1911년 3월 23일부터 4월 3일까지 석주의 ‘망명일기’를 읽고 있다. 열흘 남짓 기록에서 필자는 석주의 외아 들 이준형에 대한 기록과 망명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경제활동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구체적인 계획에 주목하였다. 우선 언 제 나처럼 경건하게 석주가 남긴 일기를 읽어보자. 선열일기 | 석주 이상룡의 서사록 ⑧ 망명생활에 필요한 토지와 관개시설, 생계수단 고민 이후 서간도 최초 한인 자치기관 경학사 설립 이상룡 아들 이준형,『석주유고』 정리 후 1942년 자결 글 최진홍(월간 『순국』 편집위원) 23일 준형이 민단자치회 사무실로부터 돌아와 이소운(李笑雲)과 왕비신(王丕信)의 사람됨을 성대히 말하였다. 소운은 원래 산동(山東) 사람이다. 재주가 크게 뛰어나 현재 민회(民會)의 의사장(議事長)을 맡 고 있는데, 스스로 호를 반옹(半翁)이라 부른다. 준형 의 필담이 민첩한 것을 보고 아마 글씨를 잘 쓴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종이를 펴놓고 먹을 갈면서 굳이 글씨를 써주기를 청하였다. 준형이 거듭 사양하였으나 되지 못하게 되 어서 ‘원하는 글이 무엇이냐?’고 묻자 소운이 답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만났다는 표적을 삼고자 하니, 편 한대로 솜씨를 남겨 달라.”고 하였다. 준형이 붓을 잡 고 쓰기를, 옛날 중국이 좋다고 듣고 昔聞中國好 지금 중국인이 되었네 今爲中國人 원하노니 송백의 그늘에 의지하여 願依松柏蔭 길이 늙지 않는 봄을 두르리 長帶不老春 라 하자, 소운이 즉석에서 읊기를, 의관이 곧 다른 제도요 衣冠乃異制 언어가 같지 못하니 言語不同音 비록 동포의 우의가 있다 하지만 雖有同胞誼 아마 마음에 들지 않을 듯하네 其如不稱心 라고 하였다. 대개, 작년 가을의 사변(1910년 8월 경술국치, 일본의 대한제국 강제병합-필자) 이래로 청나라 사람들은 우리와 일본이 실제 합심하고 있다 고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응답이 이와 같았던 것 이다. 왕비신(王丕信)은 인격이 후덕하고 솔직하나 글 은 소운에게 못 미치는 듯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