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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복룡(裵福龍) 1874~미상/의병/건국훈장 애족장
1907년 충북 청안군(清安郡) 보은군(報恩郡) 등지에서 김회경의진(金會景義陳)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충북 지역에서 명성을 떨치던 의병장 이강년(李康季)은 1907년 7월 7일 제천(堤川)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것을 비롯하여, 9월 16일 싸릿재, 9월 27일 죽령(竹嶺),10 월 5일 단양(丹陽) 고리평(故里坪), 10월 23일 풍기(豊基) 백자동(柏子洞)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배복룡은 1907년 7월 17일 의병장 김회경이 의병을 모집하자 이에 참여하여 20여 명으로 포군을 결성한 후 총기를 휴대하고 10월경까지 청안군 보은군 일대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28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0년 대사령(大赦令)에 의해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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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취선(魚聚善) 1870.05.25~1936.05.03/의병/건국포장
1896년 을미의병 당시 유홍석의진(柳弘錫義陣)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1911년 4월 의병 가족 50여 가구와 함께 중국 신빈현(新賓縣) 평정산(平頂山) 난천 자(暖泉子)로 이주하여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이 추진한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참여하였다. 강원도 춘천(春川) 출신의 유홍석은 의암 유인석의 재종형이다. 1895년 을미사변이 발생하고 이어서 11월 단발령이 내려지자, 유중락(柳重洛) 유봉석(柳鳳錫) 김경달(金敬達)과 함께 거의하였다. 그 후 제천의진(堤川義陳)이 형성되어 유인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자 이에 합류 하여 서무(庶務)를 관장하였다. 어취선은 유홍석의 휘하에서 군자금모집 활동에 참여하였다. 1905년 1월 춘천 가정(柯亭)에서 유인석을 만나 그 문하에 들어갔으며, 을사늑약 이후 운강(雲岡) 이강년(李康季)을 비롯하여 김상태(金尙泰) 등 각처 의병장들과 교류하였다. 1911년 4월 평정산 난천자로 이주하여 유인석과 함께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참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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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금자(洪金子) 1912~ 미상/학생운동/대통령표창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광주학생 운동이 일어났다. 서울에서는 동조시위 움직임이 움텄 다. 1930년 1월 서울에서도 20여 개교에 달하는 각급 여학교와 남학교의 연합시위운동이 추진되었다. 당초 여학생과 남학생이 각각 시위운동을 계획하였으나, 남녀 학교 대표들의 논의를 거쳐 연합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한 것이다. 15일 오전 9시 30분 각 학교가 일제히 만세시위를 시작하여 종로 네거리에 집결한 후 연합시위 운동을 벌이기로 약정하였다. 태화여학교 보통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홍금자는 1월 15일 학교가 임시휴교하자, 2학년생 정태이(鄭泰伊) 등의 주도로 학우들과 함께 인근의 경성보육학교(京城保育學校)에 집결하여 연합 시위운동을 벌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이른바 '경찰범처 벌규칙 위반'으로 구류 20일 처분을 받고 종로경찰서에 14일간 구류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