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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⑰ 83 1945년 경북 구미 출생으로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30여 년 교사생활과 함께 작가, 시민기자로 지냈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 치악산 밑에서 창작일에 전념하 고 있으며 광복회 고문을 맡고 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 · 『허형식 장군』, 산문집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 『항일유적답사기』 · 『누가 이 나라를 지켰 을 까』 · 『영웅 안중근』 · 『대한민국 대통령』 등이 있다. 이밖에도 사진집 『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 · 『개화기와 대한 제국』 · 『일제강점기』 · 『미군정 3년사』 ·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등과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 『평화와 인권의 대통령, 김대중』 등이 있다. 필자 박 도 았다. 그러나 이 무렵에 나라의 정세는 풍운이 급박 하여 1894년에는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경장 이 연이어 일어났다. 황현은 급박한 위기감을 느끼 고 후손들에게 기록과 귀감을 남겨 주기 위하여 『매 천야록』과 『오하기문』을 써서 자기의 경험한 바와 견문한 바를 1910년 순절할 때까지 저술하였다. 1905년 11월 일본제국주의가 을사늑약을 체결하 고 국권을 빼앗아가자, 황현은 통분을 금치 못하고 중국으로 망명한 친우 김택영과 함께 국권회복운동 에 종사하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하였다. 그는 망명이 실패하자 집에다 중국 역대의 난세에 깨끗이 처신한 처사(處士) 열 사람의 행적을 시와 그림으로 그 려서 열 폭 병풍을 만들어 둘러치고 다시 이전과 같이 두 문불출한 채 역사서를 쓰면서 칩거하였다. 이 때 쓴 『매천야록』과 『오하기문』에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상을 그때마다 낱낱이 기록하고, 일제에 추종하여 나라를 판 매국노들의 행적도 낱낱이 기록하여 준열 하게 비판하였다. 1910년 8월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탄하여 나 라가 망하자 황현은 통분을 이기지 못하여 네 수의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다량의 아편을 먹고 자결하 였다. 매천사에서 바라본 지리산 차일봉(이상 필자 촬영)  매천유물전시관과 매천 선생 묘정비(廟廷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