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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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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와 雲岡 李康秊(운강 이강년)의 의병항쟁 문경새재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가운데 한 분인 운강 이강년선생이 일본군과 두 차례에 걸쳐 전투를 벌인 곳이다. 선생은 1858년 문경군 가북면 도태(현 가은읍 상괴리)에서 태어나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지만, 1884년 갑신정변을 계기로 낙향하여 학문에 전념했다.1895년 을미사변 이후 갑오, 을미개혁으로 단발령이 내려지고, 전기의병이 일어나자 선생은 1896년 2월 23일 도태장터(가은 상괴 1리)에서 창의하여 의병항쟁에 나섰다. 그 해 3월 20일부터 약 한달 동안 일본군의 주요 병참선인 조령의 동원촌(현 2관문과 3관문 사이 동화원)을 중심으로 방어진을 구축하고 수안보와 평천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1907년 일제의 정미7조약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이떄 선생은 제천에서 거의하여 연합의진을 결성하고 8월 15일 제천 천남 전투에서 일본군 1개 소대를 격파하였다. 다시 충주성을 공격한 후 9월 문경으로 진군하였다. 1907년 9월 7일 문경읍을 장악한 운강의병부대는 9월 9일 주흘루(제1관문) 주변 민가를 소각하고 약탈을 일삼던 일본군을 격퇴하고 주민들을 위로하였다. 해국사를 거쳐 당포로 진출하여 9월 10일과 11일 양일간에 걸친 갈평에서 마을에 불지르고 만행을 일삼던 일본군 1개 소대를 괘멸시켰다. 9월 14일 적성(동로)전투에서 물러나 단양 영월로 진출한 후 약 1년간에 걸쳐 일제침략에 항거하였다 선생은 1908년 7월 2일 제천 작성산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그 해 10월 1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여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운강 이강년 (1858.12.30 ~ 1908.10.13)